12일 방송된 8.15특집 "PD수첩-수수페호의 침묵" (기획 윤혁, 연출
정기화.김영호)은 광복절이면 되풀이되는 진부한 소재를 탈피한 차별성
있는 기획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당초 기획의도와는 다른 곳에 무게중심을 둬 작품의 성격이
흐려진 측면이 있었다.

이 작품은 원래 태평양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사이판섬의 수수페호에
많은 한국인이 수장됐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혀내 일제 만행의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낸다는 생각에서 기획됐다.

96년 "방송위원회 대상" 프로그램 기획부문에서 수상작으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프로그램은 따라서 수수페호와 관련된 소문의 실체를 캐내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직접 호수를 수중탐사하는 등 의욕적인 취재활동을 벌였지만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팔뼈 하나만을 발견했을뿐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지 못했다.

호수의 부영양화가 심해 수중촬영을 해도 앞이 보이지 않고 바닥이 3m
깊이의 뻘로 되어있어 인양발굴 작업을 진행시킬수 없었기 때문.

제작현실을 넘어선 무리한 기획이었다.

따라서 카메라의 초점은 일본이 사이판, 티니안 등 남양군도에서
대대적으로 벌인 유골수집 활동쪽으로 급선회 했다.

먼저 태평양 전쟁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사이판을 찾은 일본
"마리아나 헌수회"의 모습을 비췄다.

사이판에 징용갔다 살아돌아온 홍한수옹과 일본인들의 모습을 대조시켜
전쟁에 대한 두나라의 너무나 상이한 시각을 보여줬다.

"PD수첩"은 일본의 유골수집활동이 후생성 등 일본정부의 주도로
진행됐다는 사실과 일본인이 유골발굴작업을 통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유골을 수집, 합동화장한 사실도 밝혀냈다.

또 일본이 젊은이들로 구성된 일본청년유골수집단을 조직한 이유 등
일본의 유골수집활동의 실체와 배경을 분석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당초의 의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전쟁을 겪은 한.일
국민들의 현재시각이 판이하게 다른 점등을 부각시켰고 일본정부주도의
대대적인 유골발굴작업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는 돋보였다.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우리들.이역만리 외국땅에서 죽어간
징용한국인의 유골수집은 커녕 사망자수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일본인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시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점도
눈에 띄었다.

< 양준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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