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구로동 탑코 웹툰 스튜디오에서 작가들이 채색 작업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8일 서울 구로동 탑코 웹툰 스튜디오에서 작가들이 채색 작업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국내 웹툰 시장의 양대 산맥은 네이버와 카카오다. 하지만 중소 웹툰 플랫폼들이 이들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틈새시장’을 뚫고 있다. 대표적인 게 19금 웹툰 시장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전 국민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다 보니 부담스러운 영역이다. 스타트업들엔 빅테크들이 쉽사리 접근 못하는 ‘기회의 땅’인 셈이다. 19금 웹툰은 이제 틈새시장을 넘어 K콘텐츠의 한 축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등 지식재산권(IP)의 활용 범위도 커지고 있다.
“이 부분에 좀 덩어리감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요.”

서울 구로동에 있는 탑코의 웹툰 스튜디오. 성인 웹툰 플랫폼 ‘탑툰’에 연재되는 작품이 탄생하는 장소다. 스튜디오 안에 있는 작가실에는 파트별로 나뉜 공간에서 수십 명의 작가가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19금 웹툰 스튜디오 가보니…

채색 작가실에 들어서자 어두운 조명 아래 작가들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모니터 속 인물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한혜경 탑코 콘텐츠지원부장은 “채색 작가들은 빛에 따른 색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통 작업 공간을 어둡게 한다”고 설명했다. 작가실 밖에 있는 회의실에선 웹툰 PD와 작가들의 기획 회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탑툰은 19금 웹툰 분야 1위 플랫폼이다. 전 세계 가입자만 4500만 명, 매출 658억원(2021년), 보유한 자체 제작 작품만 250여 개에 달한다. 소속된 웹툰 작가만 90여 명이다. 이곳에서 매주 3~4개의 탑툰 연재 작품이 제작되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6~7개 작품이 동시에 준비된다. 한 작품에 4~6명의 작가가 제작에 나선다.

한 편을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도 1주일가량 걸린다. 홍지혁 탑코 제2스튜디오 채색팀장은 “우리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기술자 마인드가 있다”며 “각각의 주 영역에서 엔지니어처럼 일한다”고 했다.

‘틈새시장’ 노렸다

네·카는 손 못 댄 '빨간맛 웹툰'…19禁 왕좌 노리는 스타트업들
유정석 대표는 2014년 탑코를 창업했다. 당시 웹툰은 주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됐는데, 대부분 전 연령층 대상이다 보니 성인을 위한 작품은 부족했다. 유 대표는 여기서 기회를 포착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시험 삼아 성인 웹툰을 올려봤다.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유료 성인 웹툰 플랫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유 대표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탑코를 세우고 플랫폼 탑툰을 열었다.

창업 첫해 가입자 30만 명, 매출 30억원을 기록하며 웹툰계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다. 여성 대상 성인 웹툰 분야가 강점인 키다리스튜디오(레진·봄툰)와 함께 독보적인 성인 웹툰 플랫폼이 됐다.

현재 탑코 웹툰의 성인물 비중은 70%다. 창업 초반(90%)보단 줄었지만 여전히 비중이 높다. 매출로 치면 성인물 매출 비중이 90%나 된다. 웹툰업계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인 네이버 카카오와 경쟁하기 위해선 이들이 하지 않는 성인물 장르를 노리는 게 가장 차별화된 전략이었다”고 평가했다.

“무협과 누아르로 영역 확장”

탑코는 에로틱 웹툰의 성공을 바탕으로 무협과 누아르, 공포 콘텐츠로의 확장을 준비 중이다. 19금 제한에 걸리진 않지만 이 역시 성인이 주 타깃이다. 김경수 탑코 부사장은 “가장 높은 구매력을 갖춘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해 메뉴 구성을 다변화하고 IP를 확대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웹소설 플랫폼인 노벨피아를 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 부사장은 “작품 조회 수가 1~2위인 작가들은 월 2000만원 넘는 수입을 얻는다”며 “150위권 안에만 들어도 월 130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오디오로까지…콘텐츠 영역 확대

탑코가 운영하는 탑툰이 남성 이용자를 겨냥한다면, 키다리스튜디오가 운영하는 봄툰은 여성을 겨냥한 웹툰 플랫폼이다. 봄툰의 매출은 연 300억원 규모. 여성 독자를 겨냥한 로맨스와 남자끼리의 사랑을 다룬 BL(boy’s love) 장르의 웹툰을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12만 명이 신규 가입했다.

키다리스튜디오가 운영하는 또 다른 플랫폼인 레진코믹스도 성인 콘텐츠로 인기가 많다. 윤예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19세 수위의 여성 겨냥 성인물을 전문으로 향유할 수 있는 플랫폼은 봄툰과 레진이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풍부한 무협만화 IP가 강점인 미스터블루 역시 19금 BL 웹툰을, 투믹스도 성인용 콘텐츠를 제공 중이다.

성인을 겨냥한 오디오 콘텐츠 스타트업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미국 포브스가 ‘주목할 만한 펨테크(여성+기업) 스타트업’으로 선정한 블러시는 여성 대상 웹툰, 웹소설에 오디오 매체의 특성을 접목했다. 누군가 옆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듯한 ASMR(심리적 변화를 주는 백색소음) 콘텐츠가 강점이다.

‘플링’을 운영하는 센슈얼모먼트는 1300여 개의 성인 대상 오디오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10여 명의 전문 작가와 120명의 성우가 플링과 협업한다. 한예진 센슈얼모멘트 이사는 “섹슈얼계의 넷플릭스는 왜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성인 콘텐츠라고 해서 다 저급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대형 플랫폼들도 이 분야 시장이 커지자 비슷한 콘텐츠를 내놓기 시작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웹툰은 ‘17금’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제시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올초 ‘어른 로맨스 공모전’을, 비슷한 시기 네이버웹툰은 ‘매운맛 로맨스 공모전’을 열었다. 탑툰에서 연재되는 성인물과 비교해 수위는 훨씬 낮지만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