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DTx·Digital Therapeutics)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약물 부작용 등 기존 의약품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전자기기의 발전이 디지털치료제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모양새다. 선진국에 비해 의약 분야 원천기술 수준이 낮은 우리 기업이 반도체, 전자기기 등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홍순재의 자본시장 OVERVIEW] ‘폭풍 성장’하는 디지털 치료시장에 주목해야 할 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약은 크게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으로 나뉜다. 합성의약품은 말 그대로 화학적인 합성과정을 거쳐서 만든 약이다. 해열제인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바이오의약품은 미생물 또는 배양조직의 세포를 통해 생산되는 약이다.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는 데 쓰이는 백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런 약들은 신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부작용을 일으키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은 해열제로는 매우 효과적인 약이지만, 오랜 기간 복용하면 간, 신장, 위 등 장기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환자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하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다. 디지털치료제가 기존 의약품의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독성과 부작용 측면에서는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독성 등 부작용 적은 디지털치료제
먼저 전통적 치료제와 디지털치료제의 차이점부터 알아보자. 형태를 보면 전통적인 치료제는 알약, 물약 등 주로 고체 또는 액체 상태인 반면 디지털치료제는 모바일앱, 게임, 가상현실(VR)과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형태를 띈다. 전달방식도 다르다. 디지털치료제는 입으로 먹거나 피부로 흡수하는 방식이 아닌 덕분에 개발 비용이나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생산비용 또한 전통적 치료제보다 훨씬 적게 든다. 환자의 복약관리도 실시간으로 가능해 임상자료를 쉽게 축적할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페어테라퓨틱스(Pear Therapeu)가 개발한 ‘리셋(reSET)’은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디지털치료제다. 대마, 알코올, 코카인 등 약물 중독 환자들을 위한 스마트폰 앱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이다. 워봇(Woebot)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 전문가들이 개발한 우울증 치료용 챗봇이다. 마치 상담사처럼 채팅을 통해 환자의 정신건강을 체크한다.

디지털치료제 개발분야는 확대되는 추세다. 초기에는 주로 정신질환이나 신경질환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통증, 시야장애, 당뇨, 근감소증 등으로 늘어났다. 암 치료용으로 개발하는 회사도 있다.

6년간 4배 성장 예상되는 미국 디지털치료제 시장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드설리번에 따르면 2017년 8억8900만 달러였던 미국의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0년 17억2800만 달러, 2022년 31억3700만 달러, 2023년 44억2200만 달러로 6년 동안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미국 의약품 유통과 가격 정책에 영향력이 큰 의약품 중개업자들도 작년 초부터 인지행동 치료, 정신건강, 당뇨 등 만성질환과 관련된 15개 디지털치료제를 선정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미국 보건당국도 디지털치료제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인 지원과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국내 기업들도 속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로완은 치매 예방 프로그램인 ‘슈퍼브레인’을 개발해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슈퍼브레인은 AI 기반의 뇌 기능 향상 알고리즘을 통해 치매 발병을 예방하고 지연시킬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혈관 위험인자 관리, 인지훈련, 운동, 영양교육, 동기강화의 5가지 콘텐츠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15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인하대, 이화여대, 아주대, 전남대, 경희대 등과 함께 약 3년간 진행했다. 이 밖에 여러 대형병원의 연구개발팀과 정보기술(IT) 벤처회사들이 연합팀을 구성해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전자약 관련법 미비… 제도 개선 서둘러야
전자약(electroceuticals)도 디지털치료제의 한 분야다. 화학반응을 통해 신경신호를 제어하는 기존 의약품과 달리 전기자극 등을 통해 신경신호를 인위적으로 제어해 면역 및 대사 관련 질환을 치료·완화하는 약물 대체 치료법이다.

주로 머리 등 신경계에 전기자극을 줘 우울증과 불면증 등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있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도 적용되고 있다. 전자약으로 미주신경을 자극해 사이토카인 생성을 억제하는 식으로 염증을 줄인다. 이 밖에 복부신경을 전기로 자극해 음식섭취 욕구를 줄이는 기술, 말초신경 자극을 통해 배뇨기능을 제어하는 기술도 있다.

리포트앤드데이터는 2020년 230억 달러 수준이던 글로벌 전자약 시장이 매년 8.5%씩 확대돼 2028년에는 4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선 와이브레인이 우울증 치료 전자약 ‘마인드스팀’으로 미국 임상에 도전할 계획이다. 뉴아인은 안구건조증, 녹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신경손상을 전기자극으로 회복하는 전자약을 개발 중이며, 리메드는 만성통증 치료를 위한 신경자극기를 생산해 미국 시판에 착수했다.

국내에 전자약과 관련된 의료기기법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에 국내 업체들은 주로 미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는 AI 기술과 데이터분석 기술, 디지털 기기 기술이 접목돼야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국내 기업들이 잘하는 분야인 만큼 정부가 주도해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면 향후 한국을 먹여살릴 미래 먹거리가 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홍순재의 자본시장 OVERVIEW] ‘폭풍 성장’하는 디지털 치료시장에 주목해야 할 때

홍순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 상무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KDB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에서 이슬람채권 발행 업무와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다. 기업 M&A와 투자유치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