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진이 페놀 분해 단백질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진이 페놀 분해 단백질 관련 실험을 하고 있다. 생명연 제공
면역력을 높이려면 항체의 재료인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단백질엔 수십 가지 아미노산이 3차원으로 얽혀 있다. RNA(리보핵산)가 DNA(데옥시리보핵산) 명령에 따라 아미노산을 연결해 단백질을 만든다. 연결 과정은 ‘접힘과 풀림’으로 요약되는데, 어떻게 접히고 풀리느냐에 따라 단백질 기능이 결정된다. 단백질 접힘은 최근 생화학, 생물리학계의 주된 관심사다. 치매, 파킨슨병, 헌팅턴병 등 퇴행성 뇌질환은 단백질 접힘에 오류가 생겨 발병한다.

과학계에는 단백질이 ‘깔때기’ 모양처럼 위에서 아래로 좁아지며 접힌다는 가설이 있다. 이를 최근 KAIST 화학과 김태우 연구원, 이효철 교수 연구팀이 입증했다. 생체 내 전자 전달에 관여하는 ‘사이토크롬 단백질’이 접히는 과정을 고속으로 촬영했다. 초 이하 단위 극도로 짧은 시간마다 변하는 단백질에 X선을 쏴 산란 신호를 얻고, 이 신호를 토대로 연속 ‘스냅숏’을 만들어 영상화했다. 이른바 ‘시간 분해 X선 산란법’이다.

연구팀은 단백질 접힘 속도가 수학적으로 ‘지수함수의 중첩’ 형태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새로 발견했다. 접힘 경로가 무한대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종착지인 ‘올바른 접힘’ 모양은 한 가지였다. 연구팀 관계자는 “잘못된 접힘 경로(missfold)를 피할 수 있다면 퇴행성 신경 질환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남대 응용화학공학과 이창수 교수는 스위스 연방공과대(ETH 취리히),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와 함께 단백질의 3차원 구조 변화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고 이달 발표했다.

연구팀은 ‘초저온전자현미경(Cryo-EM)’을 활용했다. 시료를 영하 200도에 가깝게 급랭한 뒤 전자빔을 쏴 3차원 고해상 이미지를 출력하는 장비다. 이 현미경 사용 시 관건은 적절한 형태의 시료를 설계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단백질 접힘 과정을 20밀리초(㎳: 1㎳=1000분의 1초)에서 1500㎳까지 제어할 수 있는 특수 칩을 개발했다. 이를 초저온전자현미경에 넣고 관찰해 1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초고해상도로 단백질 이미지를 구현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한 편의 영화처럼 단백질 구조 변화를 연속적으로 볼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단백질로 만든 바이오 센서로 치명적 독성 물질인 페놀을 분해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와 함께 페놀 분해 촉진 단백질 ‘dmpr’의 활성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새롭게 발견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연구팀은 단백질에 형광 물질을 발라 상태 변화를 추적하는 ‘단일 분자 형광법’과 ‘X선 결정화 기법’ 등을 써 dmpr을 분석했다.

그 결과 dmpr이 반응성이 없는 두 개 분자가 결합해 존재하다가 페놀 등이 들어오면 네 개 분자 결합체로 변하면서 오염물질을 분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 관계자는 “20여 년간 난제였던 dmpr의 페놀 인식 및 분해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며 “독성 물질을 감지하고 분해하는 바이오센서 제작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