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제작 땐 시뮬레이션 중요
일반 기업은 범밀도함수로 파악
단점은 예측 정확도 60% 그쳐

연구팀 '반데르발스 힘' 감안
새 이론 만들어 90%까지 높여
KAIST 화학과 소속 대학원생들이 소재의 물성을 예측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실험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김형준 교수 제공

KAIST 화학과 소속 대학원생들이 소재의 물성을 예측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실험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김형준 교수 제공

지난해 일본과의 경제 전쟁을 계기로 소재가 과학기술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신소재 개발에서 중요한 것은 분자 설계다. 소재가 만들어진 뒤 나타낼 특성(물성)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설계도를 제작해야 한다. 그러나 예측과 실제 물성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국내외 공동 연구팀이 물성 예측 오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연구 성과를 내놔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 전지인 수소 연료전지에 쓰이는 고가의 백금 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원천 기술도 또 다른 국내외 공동 연구진이 개발했다.

극히 작은 분자 간 인력으로 소재 업그레이드

세바스티안 르벡·김민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원, 김원준 창원대 화학과 교수, 김형준 KAIST 화학과 교수는 기존에 40% 안팎이던 소재 물성 예측오차를 10% 내외로 줄이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31일 발표했다. 이 논문은 ‘미국화학회지’ 지난달 10일자에 게재됐다.
범밀도함수(DFT)와 새 이론인 u-MBD로 소재 물성을 예측하는 개념도(왼쪽). 오른쪽 방사형 그래프에선 u-MBD(가운데 가장 작은 오각형) 예측 오차가 10% 내외로 가장 작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밀도함수(DFT)와 새 이론인 u-MBD로 소재 물성을 예측하는 개념도(왼쪽). 오른쪽 방사형 그래프에선 u-MBD(가운데 가장 작은 오각형) 예측 오차가 10% 내외로 가장 작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재 물성 시뮬레이션은 통상 일종의 수학(계산과학) 프로그램인 ‘범밀도함수(DFT)’로 파악한다. DFT는 분자 내부에 전자가 움직이는 모양과 에너지 등을 양자역학으로 계산한다. 전자는 고정된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만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깜깜이’ 상태인 무수한 전자와 원자핵의 결합체인 분자가 과연 어떤 조건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DFT다. 월터 콘 미국 캘리포니아대 이론물리연구소 소장이 범밀도함수를 개발해 199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소재, 화학 관련 기업은 DFT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김형준 교수는 “DFT는 소재의 물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데르발스 힘’을 감안하지 못해 예측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데르발스 힘은 전자 운동 상태 변화에 따라 감지되는 분자 간 인력(당기는 힘)이다. 예를 들면 도마뱀이 벽이나 천장에 붙어 안 떨어지고 달릴 수 있는 이유도 발바닥 분자와 벽 사이에 작용하는 반데르발스 힘 때문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반데르발스 힘을 기술할 수 있는 새 이론 ‘u-MBD(보편 다체계 분산력)’를 개발하고 이를 DFT와 융합해 적용했다.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소재의 주요 물성인 분자 간 결합에너지(㎉/mol) 예측 오차가 평균 10% 내외로 나타났다. 리튬이온전지 전극소재, 그래핀 등 100여 개 소재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DFT 단독으로 진행할 때 평균 오차 40%보다 30%포인트가량 줄었다. 김 교수는 “촉매 등 다양한 기능성 소재 설계에 DFT와 u-MBD 융합 시뮬레이션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갱이 컨트롤’로 기능성 신소재 발견

반데르발스 힘 활용 외에도 소재 기능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경계결함’을 이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다결정 소재 안을 들여다보면 크기와 모양이 각자 다른 결정 알갱이들이 뭉쳐 있다. 이들 알갱이 경계에 생기는 미세한 틈이 경계결함이다.

경계결함은 소재 종류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강철에선 경계결함이 많을수록 강도가 떨어진다. 반대로 배터리 전극소재의 경계결함은 많아질수록 이온 전도도가 좋아져 배터리 효율을 높인다.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대) 폴 알리비사토스 화학부 교수와 오명환 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 현택환 나노입자연구단장과 조민지 연구원은 이 경계결함에 주목했다. 적당한 경계결함이 있는 저가의 새 촉매를 개발하면 수소 연료전지에 쓰이는 고가의 백금촉매를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연구팀은 정육면체 모양 결정인 산화코발트 나노입자를 기판으로 사용하고, 육면체 각각의 면에서 산화망간 결정을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경계결함을 균일하게 만들고, 결함 밀도와 구조를 제어하는 원천 기술을 개발했다. 벽돌이 균일하게 배열된 보도블록처럼 소재 안 나노미터 크기의 알갱이를 배열한 것이다.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첨단 이미징 장비를 활용했다.

현 단장은 “모든 전자 기기는 화학 소재로 이뤄져 있으며, 소재에선 결함 제어가 가장 중요하다”며 “상용화되기까진 어려운 과정이 남았지만 수소 연료전지 촉매를 다변화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지난달 16일자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 반데르발스 힘

19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네덜란드 물리학자 요하네스 디데릭 반데르발스가 발견했다. 정전기적 상호작용 때문에 분자 간 찰나에 생기는 느슨한 힘이다. 양이온과 음이온이 만나는 ‘이온 결합’이나 전자끼리 묶여 원자를 이어주는 ‘공유 결합’ 등 강한 힘과 구분된다. 반데르발스 힘으로 층간 결합이 이뤄진 2차원 소재를 반데르발스 물질이라고 한다. ‘꿈의 신소재’라고 불리는 그래핀도 반데르발스 물질 가운데 하나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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