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가상화폐(암호화폐) 시장의 '닷컴 버블'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이젠 옥석가리기를 거쳐 제대로 된 기업과 서비스들이 나오기 시작할 시기죠. 인터넷도 버블 이후 허황된 것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해시드라운지에서 한경닷컴과 만난 얏 시우(Yat Siu)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은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 내다봤다. 1997년 홍콩 최초의 인터넷 공급회사 아웃블레이즈(Outblaze)를 설립한 그는 홍콩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09년 아웃블레이즈의 서비스 사업 부문을 IBM에 성공적으로 매각하고, 이후 모바일 게임 기업 애니모카 브랜드를 설립해 호주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기도 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내일의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 of Tomorrow)'로 선정되는 등 글로벌 IT업계와 게임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우 회장은 블록체인 산업이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암호화폐 시장은 1990년대 닷컴 버블과 자주 비교된다. 블록체인 산업이 어느 단계까지 와있다고 보나.

"블록체인의 기술적 면에 대해서만 논하자면 인터넷 초창기인 1996~1997년 수준으로 보인다. 반면 암호화폐 등 금융적 측면에서는 이미 '버블'은 지난 것 같다. 두 번 다시 버블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들이 버블을 경계하므로 점차 건전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의미다."

- 여전히 암호화폐 시장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

"지난 암호화폐 시장 열풍 이후 사람들의 경각심이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투기 현상은 줄어들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암호화폐에 투자하려 한다면 어떤가. 이제는 예전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넣으려 하진 않을 것이다. 닷컴 버블 당시 기업공개(IPO) 시장도 암호화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닷컴 버블 이후 IT 기업 투자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됐다. 기업 가치를 꼼꼼히 검토해 좋은 기업을 골라내기 시작했고 점차 제대로 된 기업들이 자리 잡았다.”

- 그렇다고 해도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비관적 시각은 상당하다.

"닷컴 버블 이후에도 마찬가지었다. 버블이 꺼지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허황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어떻게 됐나. 불과 20년 사이에 인터넷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 블록체인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 확신한다."

- 블록체인 기술 자체의 성장속도도 빠르진 않은 것 같다.

"금융 시장 성장이 선도하고 그 뒤에 기술이 따라잡는다. 기술 발전속도보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지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블록체인의 채택 속도는 인터넷보다도 훨씬 빠를 것이다.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지만 충분한 하드웨어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 블록체인 성장이 인터넷 성장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인터넷은 애초에 물리적 한계로 인해 블록체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없었다. 인프라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조금씩 보급되던 시기인 2000년 전후를 떠올려보라. 와이파이 같은건 당연히 없었다.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였다. 초고속 인터넷망도 구축돼 있지 않았다. 반면 블록체인은 이미 모든 하드웨어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와이파이는 물론이고 5세대 이동통신(5G)까지 생겼다. 지난 10년간 스마트폰 시장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빨랐던 이유는 이미 인터넷 기반 시설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블록체인 시장은 스마트폰 시장보다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 최근 블록체인 산업, 특히 게임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계기가 있는지.

"블록체인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다. 단 사업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큰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일종의 신뢰 기반 거버넌스 정도로 이해했지만 지난 2017년 '크립토키티'가 나온 뒤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크립토키티 캐릭터 구입에 막대한 돈을 썼다. 암호화폐 시장 버블이 꺼진 지금도 해당 캐릭터들은 상당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크립토키티에 열광했을까? 그 질문에 집중했다."

- 답을 찾았나?

"희소성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아이템'이라는 가치가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동안 인터넷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는 있었어도 '가치'를 전송하거나 보관할 수는 없었다. 블록체인은 그게 가능하다. 가령 작가가 그림 원본 파일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그림의 가치는 제로(0)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껏 원본을 복제할 수 있으니까. 어떤 그림이 원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원본이 무엇인지, 누가 소유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림을 하나의 토큰으로 만들고, 이를 블록체인상에 올려 희소성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이를 '대체 불가능 토큰(NFT)'이라고 한다. 크립토키티를 계기로 NFT로서의 게임 아이템의 가치와 블록체인 활용도에 눈을 뜨게 됐다."

- 블록체인을 이용해 게임 아이템을 만들면 정확히 뭐가 달라지나.

"게임 아이템을 진정한 의미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온라인 게임에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아이템을 모았는데 게임 서비스가 갑자기 종료된다면 모든 아이템 가치는 사라진다. 게임 아이템을 NFT로 만들어 블록체인에 올린다면 그렇지 않다. 게임 서비스가 종료돼도 블록체인이 유지되는 한 아이템은 온전히 유저의 소유로 남아있게 된다. 다른 게임에서 쓸 수도 있고 심지어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얏 시우 애니모카 브랜드 회장(사진=해시드)
- 이해하기 쉽게 더 간단한 예를 들어달라.

"지금까지의 게임은 폐쇄적 구조의 테니스장과 같았다고 보면 된다. A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려면 A테니스장에서 파는 라켓만 사용해야 했다. A테니스장이 문을 닫으면 구입한 라켓도 사라진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게임 업계의 상식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엄연히 내 돈을 주고 구입한 라켓인데 A테니스장이 문을 닫는다고 라켓도 사라진다니. 라켓을 갖고 B테니스장에 가서 테니스를 칠 수 있어야 정상적이다. 그래야 온전하게 '소유물'이다. 지금까지는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은 온전한 유저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블록체인은 이를 가능하게 했다."

- 해시드의 분산형 애플리케이션(댑·DApp) 육성 프로그램인 '해시드랩스' 어드바이져로 합류했다고 들었다.

"블록체인과 같은 신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오픈소스 정신처럼, '함께 일하는 것'이다. 현재 암호화폐 지갑 이용자 수가 3000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96~1997년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 수와 비슷하다. 굉장히 작은 초기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알리바바, 구글, 야후 등 많은 회사들이 당시 아주 작은 기업으로 출발해 현재 위치까지 왔다. 10년 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이러한 기업들이 나오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답은 협력이다. 과거에는 경쟁 모델이 주였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로는 협업 모델이 중요했다. 해시드는 한국에서 여러 블록체인 기업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안다. 나와 같은 비전을 공유한다고 느꼈다."

- 어떤 블록체인 기업들이 살아남을까.

"결국 목적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왜 이 프로젝트가 필요하며 얼마나 유익한지 증명해내야 한다. 만약 단순히 돈만 바라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공동의 목적의식을 가진 팀은 위기를 맞아도 해결책을 모색하며 성장해나가는 힘이 있다. 닷컴 버블에서 살아남아 성장한 기업들에게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암호화폐 공개(ICO) 열풍을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들과 사라진 기업들의 차이점도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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