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PH파마 대표 “녹내장 약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녹내장의 주요 발병 원인은 동양인과 서양인이 서로 다르다. 서양에서는 안압(眼壓·안구 내부의 압력)이 정상 범위(10~21㎜Hg)보다 높아져 시신경을 압박해 녹내장이 생기는 게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반면 동양에서는 정상 안압이지만 시신경이나 혈액순환의 약화 등으로 생기는 녹내장이 3분의 2 이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녹내장 약은 모두 안압이 정상 범위보다 높을 때 이를 정상 수준으로 낮추는 역할을 했다. 정상 안압일 때 생기는 녹내장에는 약이 마땅치 않다.

바이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PH파마는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 정상안압 녹내장에 쓸 수 있는 약을 개발하고 있다. 김재식 PH파마 대표(53·사진)는 “정상안압 녹내장을 적응증으로 한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PH-201’로 국내에서 임상 2상을 완료했다”며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도 1상을 마쳤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내년 3월 열리는 아시아태평양안과학회(APAO)에서 결과를 발표한 뒤 한국과 일본에서 3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임상 2상은 생략이 가능하다. 1상에서 한·일 인종 간 약물 반응의 차이가 없다는 게 확인되면 건너뛸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PH-201은 어떻게 약효를 낼까. 김 대표에 따르면 이 파이프라인도 안압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녹내장에 대응한다는 점은 기존 약과 같다. 다만 PH-201은 기존 녹내장 약과 달리 안압을 정상 범위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시신경이 받는 압박을 더 줄여 녹내장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안압이 7㎜Hg보다 떨어지면 안구가 찌그러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7~10㎜Hg 사이에서 유지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기존 약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안압 배출구 ‘공막(uveoscleral)’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상 범위 밑으로는 안압을 떨어뜨릴 수 없다”며 “PH-201은 안압 주 배출구인 ‘섬유주대(trabecular meshwork)’를 조절할 수 있어 더 큰 폭의 안압 조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녹내장 약은 눈이 충혈될 확률이 45% 이상인데 PH-201는 24% 미만으로 부작용 가능성도 낮다”며 “약이 안구에 흡수가 잘 돼 눈 혈관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재식 PH파마 대표 “녹내장 약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이밖에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파이프라인 ‘PH-303’도 개발하고 있다. NASH는 알콜 섭취와 관계 없이 서구화된 식습관 등 때문에 간에 지방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생기는 병이다.

간에 지방이 쌓이면 호중구(백혈구의 일종)가 외부 물질을 처치하기 위해 ‘엘라스타아제’라는 이름의 효소를 과다분비한다. 이렇게 되면 엘라스타아제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염증면역반응이 일어난다. NASH가 심해지면 간경변 또는 간암이 된다.

PH-303은 일단 엘라스타아제 분비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역할을 하도록 개발되고 있다. 지방 축적이라는 병의 근본 원인을 고치는 건 아니지만 염증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지방 축적을 억제하는데도 관여한다. 지방 축적으로 인한 엘라스타아제 과다분비는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슐린 저항성’을 야기한다. 그런데 지방 축적과 인슐린 저항성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된다. 지방이 축적되면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고, 그렇게 생긴 인슐린 저항성이 다시 지방 축적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김 대표는 “PH-303은 엘라스타아제 분비를 억제함으로써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는 걸 막고 이는 다시 지방 축적을 억제하는 효과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만간 미국에서 PH-303에 대한 임상 1상을 마무리한 뒤 내년 하반기에 2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PH-303의 적응증을 희귀난치성 질환 ‘알파-1 항트립신(A1AT) 결핍증’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 병은 호중구로부터 각종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효소 A1AT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장기와 관절이 손상되는 병이다.

체내 점액이 너무 많이 생산돼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병 ‘낭포성 섬유화증’(CF)으로도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A1AT 결핍증과 CF에 대해서도 내년 하반기에 미국 임상 2상을 시작하려고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PH파마는 PH-201을 벨기에 바이오기업 아마켐에서, PH-303을 독일 바이엘에서 도입했다. 당시 두 파이프라인은 각자 임상 2상을 마친 상태였다. 물질당 도입 가격은 10억원 이하였다. 이전 회사들은 이 파이프라인을 전망 있는 물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적응증과 임상 디자인 등을 바꾸면 좋은 파이프라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도입했다”며 “예컨대 바이엘은 PH-303을 기관지확장증 약으로 추진했는데 이를 NASH로 바꾸고 임상시 투약 용량 등도 전체적으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PH-201과 PH-303 모두 병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치료제가 아닌 병의 악화를 막는 억제제다. 환자가 약을 계속 사야 하기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는 개발에 성공하면 지속적인 수요가 보장된다.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 앨러간에 따르면 녹내장 약 시장 규모는 2014년 61억달러, 올해 68억달러, 2022년 72억달러로 점차 성장할 전망이다. 독일 도이치방크에 따르면 비알콜성지방간염(NASH) 약 시장 규모는 내년 7억 달러에서 2022년 171억 달러, 2030년 371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PH파마는 화학성분 항암제 ‘톡신’도 개발 중이다. 김 대표는 “최근 면역항암제가 인기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 바이오의약품만 사용할 수 없고 톡신도 같이 사용한다”며 “미국 퍼듀대에서 톡신 ‘T2’와 ‘T4’를 도입했고 이들의 분자구조를 변형시켜 ‘T1’과 ‘T3’를 자체 개발해 모두 4개의 톡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들 물질은 현재 비임상 단계다. 김 대표는 “톡신은 내성 문제가 큰 걸림돌인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1988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해 회계감사와 경영컨설팅을 했다. 1991년 KAIST 경영공학 석사, 2005년 경희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삼일회계법인에서 헬스케어 기업에 자문하며 이 분야에 눈을 떴다. 2014년 금융컨설팅본부장을 마지막으로 삼일회계법인을 떠나 주요 헬스케어 기업을 두루 거쳤다. 2014~2015년 대웅제약 경영기획본부장, 2015~2017년 한미약품 경영지원본부장, 2017~2018년 에빅스젠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김 대표는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굵직한 업무를 처리한 경험이 많다. 대웅제약에서 일하던 2015년 코스닥상장기업이었던 한올바이오파마 인수합병(M&A)을 주도했다. 한미약품에 있을 때는 의약품관리 자동화시스템기업 JVM을 인수했다. 에빅스젠에서는 시리즈 B 펀딩을 주도해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 이 회사가 임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PH파마로 자리를 옮긴 건 지난달이다. 지난 7월 지인의 소개로 PH파마 창업자 허호영 대표를 알게 돼 공동대표 제안을 받았다.

김 대표는 “허 대표는 미국에서 바이오기업 5개를 상장시켰고 사노피, 존슨앤드존슨, 애보트 등 빅파마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며 “함께 일하면서 한국 바이오벤처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PH파마는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허 공동대표는 미국 법인에 상주하며 미국·유럽 연구개발(R&D)을 총괄한다. 회사 직원 수는 서울에 약 10명, 미국에 약 15명이다.

투자 유치는 시리즈 B까지 진행해 약 500억원을 모았다. 이르면 연말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를 할 전망이다. 내년 4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신청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회사 설립 연도는 2015년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