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비급여 의약품 때문에 암 환자와 희귀질환자의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이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내 약값이 저렴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도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바른미래당)은 29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국먼디파마의 림프종성 뇌수막염 치료제 데포사이트,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파슬로덱스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비급여로 남아 있다”며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 중 다국적 제약사들이 건강보험 신청을 하지 않는 약이 많다”고 했다.
다국적제약사 "약값 내려간다"…보험적용 신청 기피로 환자 고통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급여 등재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환자 고통만 커지고 있다.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에 따르면 암 환자들은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37.3%)을 꼽았다. 암 환자뿐 아니다. 희귀의약품 318개 품목 중 국내 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은 14개(4.3%)다. 허가를 받았지만 유통되지 않는 약도 76개 품목(23.9%)에 이른다. 국내 환자들이 희귀의약품 10개 중 3개를 쓰지 못한다는 의미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그동안 “2007년 이후 한국 건강보험 약값을 계산한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5%로 저렴해 급여 등재를 하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의원들의 지적이다. 최 의원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한국 법인의 비용을 높이고 이익률을 낮춰 본사에 이익을 몰아준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국은 의약품 사용량이 다른 나라보다 많아 오히려 약값이 비싼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폭리를 취한다는 의혹을 해소하려면 한국 기업들처럼 원가 공개 등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아비 벤쇼산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장(MSD 한국지사장)은 “한국 약값이 OECD 국가 대비 어느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정확한 분석 결과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다른 나라 약값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국내 약값이 저렴한지 등에 관한 연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비싼 신약을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하기 위해 만든 위험분담제도가 환자 고통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한부 급여로 불리는 난소암 표적치료제(아스트라제네카의 ‘린파자’)는 지난해 10월 보험 급여가 적용됐지만 내년 1월 급여 기간이 끝나 환자가 다시 수백만원의 약값을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존 환자에게는 일정 유예 기간을 적용하는 등 혼선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