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일 대통령궁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명예 전자영주권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에스토니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5일 대통령궁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명예 전자영주권을 전달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여론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고 있는 중앙정부와 달리 지방자치단체들은 ‘4차 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블록체인 실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라 할 만하다. 가상화폐와 연동돼 리스크가 있는 만큼 좁게 실험하고 확산하는 전략에 지방정부가 최적화된 덕분이다.

◆서울·제주는 ‘발상의 전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3일 스위스 주크를 찾아 ‘블록체인 시티 서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5년간 블록체인 기업 육성, 마중물 펀드 조성, 전문인력 양성 등에 시 예산 1233억원을 투자해 서울을 ‘블록체인 선도도시’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서울시가 생태계 조성부터 힘을 쏟아 블록체인산업을 키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블록체인이 산업생태계와 공공서비스 분야의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힌 박 시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

제주도는 한발 앞서 원희룡 지사의 지난 6월 지방선거 공약을 토대로 샌드박스형 글로벌 블록체인 특구를 조성해나가고 있다. 8월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원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주의 블록체인 특구 지정을 요청할 정도로 명운을 걸었다. 그는 “제주의 특별자치도 지위를 십분 활용해 블록체인 기업들이 와서 마음껏 실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되겠다”고 밝혔다. 기존 관광·서비스업에 편중된 제주도의 미래 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핵심 콘텐츠로 블록체인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회에서는 민병두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특히 적극적이다. 가상화폐공개(ICO) 허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금지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노웅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도 최근 국회 세미나에서 “정부의 ICO 금지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블록체인이 성장동력으로 거듭나도록 국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여당 소속 중진 의원과 지자체장들이 블록체인 ‘빗장’을 풀고 바꿔나가자는 전향적 태도를 보인 점이 이목을 끈다. 김서준 해시드 대표는 “행정부 차원에선 여전히 조심스러워하지만 입법부 분위기는 상당히 변했다고 느낀다”고 귀띔했다. 블록체인산업이 한국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임을 인식, 입법부가 정부 변화를 견인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뜻이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도시나 소국 단위에서 블록체인 트렌드를 선도하는 경향은 해외도 마찬가지다. 스위스 주크와 몰타, 에스토니아, 싱가포르 등이 그렇다. 가벼운 조직 기반으로 유연하게 의사결정하고 신속하게 실행하는 스타트업과 닮은 곳이다. 김유석 딜로이트 스타트업자문그룹 상무는 “스타트업의 본질이 모험과 성장이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해법은 단순했다. 주크는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을 줬다. 블록체인 친화적 인프라 조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공무원들도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했다. 주크주는 해외 기업에 지방세를 대폭 감면해주고, 법인세율을 14.5%에서 8.5~9.6%로 낮췄다.

국토가 서울 면적의 절반인 몰타도 친(親)가상화폐 정책과 감세 혜택으로 글로벌 거래량 1위 바이낸스를 비롯한 대형 거래소 유치에 성공했다. 북유럽 소국 에스토니아는 전자영주권 등 공공서비스에 블록체인을 잘 활용한 국가로 꼽힌다. 2014년에는 가상화폐를 공식 통화로 인정했다.

영국, 에스토니아 등을 다녀온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가 차원에서 ICO 금지 철회 등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어렵다면 특정 지역에 ‘규제 프리존’을 시범운영하며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블록체인 실험' 성공한 각국 지방정부…비결은 脫규제·稅혜택 '당근'
오세성/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