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5일 공개한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초안은 일상 생활의 주요 공간이 돼버린 인터넷상에서 개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글·사진·동영상 등의 게시물만 검색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한정하면서 잊힐 권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손대지 못했다.

잊힐 권리의 보장이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보호 같은 가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 사회 내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지 않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방통위의 고심이 담긴 대목이지만 그러다 보니 가이드라인의 '약효'는 크게 떨어지게 됐다.

통상적으로 정신적·사회적 피해를 유발하는 인터넷 게시물은 타인이 올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인터넷에서 삭제 가능한 부분은 무엇인가.

▲ 먼저 삭제란 표현부터 짚어보자. 이번 조치는 인터넷 게시물의 삭제는 아니다.

원문은 그대로 놔두되 해당 게시물을 열어봐도 내용을 볼 수 없도록 하는 '블라인드 처리'만 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이를 '접근배제'라고 표현했다.

접근배제 대상은 이용자 본인이 올린 글, 사진, 동영상 등이다.

타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조처는 이번 가이드라인에 포함되지 않았다.

-- 자기가 올린 글이 문제라면 스스로 삭제하면 되는 것 아닌가.

▲ 맞다.

그래서 이용자가 직접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경우 먼저 그렇게 하도록 했다.

본인이 삭제할 수 있는데도 접근배제 요청을 하면 사업자가 거부할 수 있다.

-- 자기가 올린 글인데도 지울 수 없는 경우가 있는가.

▲ 몇 가지 경우가 있다.

자기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면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인터넷 사이트의 회원 탈퇴 혹은 1년간 계정 미사용 등으로 회원 정보가 파기돼도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 어렵다.

또 회원 계정 정보를 분실했거나 게시판 관리자가 폐업해 사이트 관리를 중단한 경우,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죽은 경우, 게시판에 삭제 기능이 없는 경우 등이다.

-- 누구한테 접근배제를 요청하면 되나.

▲ 접근배제 요청은 법인을 뺀 자연인이면 누구든 할 수 있다.

요청은 2단계로 나눠서 해야 한다.

게시물이 올라 있는 게시판의 관리·운영자(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한테 먼저 요청해야 한다.

그다음에 네이버, 다음, 구글 같은 검색서비스 사업자한테 요청해야 한다.

-- 원 게시물은 놔둔 채 검색만 안 되기를 원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유럽에서는 구글의 검색 배제가 잊힐 권리 보장의 핵심이었지만 우리는 게시판 관리자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봤다.

따라서 검색만 안 되게 할 수는 없다.

해당 게시물이 문제라고 본다면 반드시 먼저 게시판 관리자한테 접근배제를 요청해야 한다.

단, 예외는 있다.

게시판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를 중단한 경우에는 곧장 검색 사업자한테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이 내 게시물을 자기 게시물이라고 주장하며 접근배제를 요청할 수도 있나.

▲ 그래서 게시판 관리자나 검색 사업자한테 본인 확인을 하도록 했다.

접근배제를 신청할 때는 자신이 그 게시물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참고로, 타인의 게시물에 대해 허위로 자신의 게시물이라고 속여 접근배제를 요청하면 관련 법률에 따라 민·형사상 책임을 저야 한다.

또 이번에 원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고 블라인드 처리만 하도록 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다.

--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은 타인의 게시물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 맞다.

남이 올렸지만, 그로 인해 내가 고통을 받는 게시물이 잊힐 권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의 논의 수준이 그 문제에 대한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남이 올린 게시물을 삭제할 경우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보장이란 가치와 필연적으로 충돌하는데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처럼 아직 사회적 논의가 덜 무르익은 상태에서 우선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하자는 것으로 이해해달라는 게 방통위의 입장이다.

자신이 올린 게시물의 접근배제는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라는 가치와 충돌 가능성의 상대적으로 낮다.

또 자기 게시물이라면 당연히 본인이 삭제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못하던 것을 먼저 할 수 있도록 시행하자는 취지다.

앞으로 가이드라인을 시행한 뒤 효과나 부작용,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진전 수준 등을 봐가며 인터넷상 잊힐 권리의 보장 범위를 넓히고 법제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게 방통위의 구상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