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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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그룹 등 일본 대표 기업이 도쿄증권거래소로부터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이례적인 요구를 받았다. 일본 증시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조치지만 정부 입김 아래 있는 거래소가 상장사들에 주가 부양을 주문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증권거래소는 최근 도쿄증시에 상장한 3300여 개 기업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주가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상장사 절반이 투자자 외면

日거래소 "도요타·소프트뱅크 주가 올려라" 이례적 요구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PBR 1배 미만은 시가총액이 회사를 청산한 가치보다 낮은 상태로 투자자의 신뢰를 받지 못함을 뜻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사들에 가능한 한 빨리 주가 부양 방안을 공시토록 하고, 앞으로 매년 1회 이상 이행 상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할 계획이다.

거래소가 상장사들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주가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거래소는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면서도 “일본 기업이 매출과 이익에만 신경을 써 자본효율 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장기침체 영향으로 투자자의 외면을 받은 결과 일본 증시는 해외 주요 증시에 비해 투자자를 끌어들일 요인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상장사 가운데 PBR이 1배 미만인 기업 비율은 40%에 달한다. 도요타자동차(0.92배),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0.61배), 소프트뱅크그룹(0.84배) 등 시가총액 10위권 상장사 가운데 여러 곳의 PBR이 1배를 밑돈다. 유럽 증시와 미 증시에서 PBR이 1배를 밑도는 상장사는 20%와 5% 남짓에 불과하다.

1989년 세계 1위였던 도쿄증시의 상장사 시가총액 합계는 투자자의 외면 속에 상하이와 유럽 증시에도 밀리면서 순위가 5위까지 떨어졌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시장 상장사만 PBR을 1배 이상으로 개선해도 현재 700조엔(약 6973조원)인 시가총액이 850조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자산소득 두 배 늘린다

주가를 높이라는 요구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의 ‘자산소득 2배 증가’ 정책과도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기시다 내각은 2000조엔을 넘은 가계 금융자산을 투자 분야로 유치하기 위해 ‘저축에서 투자로’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작년 말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2023조엔으로 처음 2000조엔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54%(1092조엔)가 예금과 현금 형태로 잠자고 있다. 주식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가계의 금융자산을 투자 분야로 유도하면 기업 성장과 가계의 소득 증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기시다 내각은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투자 차익에 일정 기간 세금을 물리지 않는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대폭 개선하기로 했다. 작년 6월 말 현재 1703만 개와 28조엔인 NISA 계좌 수와 투자금액을 5년 내 각각 3400만 개, 56조엔으로 두 배씩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가이즈 마사노부 노무라증권 선임리서치펠로는 “가계 금융자산의 10%만 저축에서 투자로 옮겨도 가계 자산이 10조엔 불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