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세계 무역 시스템과 관련해 ‘효율성 탈피’를 강조했다. 효율성을 추구하던 기존 방식의 세계화보다는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는 회복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무역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무역을 위한 주장(The Case for Trade)' 세션의 토론자로 나선 타이 대표는 “새로운 무역 시스템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회복을 도와주는 보험 정책처럼 대가로 보험료를 요구한다”며 “덜 효율적인 세계 경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최저 비용과 최대 효과를 추구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만계 출신인 타이 대표는 2021년 3월부터 USTR을 이끌며 바이든 행정부의 무역 정책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타이 대표는 세계화의 근간이 됐던 효율성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기존) 세계화의 시대에는 엄청난 수준의 번영이 뒤따랐지만 지금은 한계에 부딪쳤다”며 “이제는 세계가 포용성, 탄력성,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 무역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율성 극대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의료보험과 같이 세계 무역 시스템이 안전망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타이 대표는 무역 시스템에서 노동자 중심 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노동자 중심의 무역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며 “소비자들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구성하는 구성원인 노동자들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타이 대표는 2020년 미국, 멕시코, 캐나다 3자 간 무역 협정(USMCA)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 금지를 결정한 점을 노동자 친화적인 무역정책의 예로 들었다.

이 세션의 또 다른 참여자인 베로니카 닐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사무총장 대행도 무역협정에서 단체교섭, 사회적 대화 등 노동 관련 조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닐슨 총장 대행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경쟁은 피해야 한다”며 “노동 착취, 아동 노동, 노동자 권리 침해 등에 의해 생산되는 제품과 서비스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 착취가 일어나는 국가와는 무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을 이끄는 데이비드 쉬머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무역 정책에서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쉬머 CEO는 “디지털 무역은 기술의 혜택과 혁신을 주도하고 기회의 번영을 이끌어낸 분야”라며 “이제는 국가마다 데이터를 현지 사정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개인정보보호 정책 강화 등 데이터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세션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참석해 무역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안 본부장은 공급망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하려는 일은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에 더 다양하고 유연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일”이라며 “(많은 정치적 자본이 들어가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기존 방식을 활용하기보다는 시장 개방을 통해 해외에 더 많은 물건을 판매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