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26일 강력한 통화긴축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은 40여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미국에서 휘발유값 등이 하락하면서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추세적인 하락세를 지켜봐야 한다고 본 것이다. 파월 의장이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이어가면서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회 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매파 본색 보여준 파월

매파본색 파월 "물가 잡는데 비용·고통 따른다"
파월 의장은 이날 전 세계 투자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 북서부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단에 섰다. 파월 의장은 이날 “인플레이션이 잡혔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시장 침체 등 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물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훨씬 더 큰 고통을 초래할 것”이라면서다.

파월 의장의 연설 직전까지만 해도 일각에선 파월 의장이 비둘기적(통화 완화 선호) 발언을 할 가능성을 점쳤다.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는 등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 연설을 1시간여 앞두고 발표된 미국의 7월 개인소비지출(PCE) 증가율도 빅스텝(0.5%포인트 인상) 확률에 힘을 실어줬다. 이날 미 상무부는 지난달 PCE 가격지수가 전월 보다 0.1%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PCE 가격지수가 전월 대비 하락한 것은 2020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7월에 비해서는 6.3% 상승하며 6월 상승폭(6.8%) 보다 둔화했다. Fed가 중시하는 물가 지표인 PCE 상승세가 꺾이면서 금리 인상 속도조절론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파월은 이날 “7월 인플레이션 수치가 낮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에 한 달 동안의 개선은 확인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부족하다”면서 “인플레이션이 2% 목표에 근접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 밀어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전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오판했던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은 강경했다. CNBC는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었을지 모르지만 뚜렷한 하락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었다고 분석했다.

○다음달 자이언트스텝 확률 커져

‘비둘기 파월’을 기대하던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혼조세로 출발한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이날 일제히 하락세로 전환했다.

파월 의장은 이날 다음달 20~21일 FOMC에서의 금리 인상폭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은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로 기울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26일 오전 10시기준 자이언트스텝 전망치는 56.5%로 절반을 넘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다음달 FOMC 전까지 발표될 각종 경제 지표로 쏠릴 전망이다. 다음달 13일 발표될 8월 CPI도 금리 인상폭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도 "9월 회의에서 결정은 데이터와 그에 따라 바뀌는 전망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잭슨홀=정인설 워싱턴 특파원/허세민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