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협의에 나섰지만 원유 증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에 나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다. 유가 안정을 위해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무릅썼다. 하지만 별 소득 없이 독재자의 정치적 입지만 강화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파이살 빈파르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부 장관은 “이번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원유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OPEC+’가 시장 상황을 평가해 적절한 원유 생산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OPEC+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협의체다. 향후 원유 생산 계획은 다음달 3일 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살만 왕세자와 정상회담을 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회담에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서방국가에 돌렸다. 그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미국의 비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이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며 “결국 실업률을 높이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추가 생산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사우디는 이미 하루 1200만 배럴까지 원유 생산을 늘렸고 2027년까지 최대 능력치인 1300만 배럴까지 증가시키겠다고 발표했다”며 “더는 여력이 없어 추가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순방 내내 증산을 촉구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증산 여력이 있는 산유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3(GCC+이집트·이라크·요르단)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그는 회의에서 “사우디를 비롯해 OPEC+가 적극적으로 증산해 국제 유가를 낮춰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원유 공급이 증대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우디도 사안이 긴급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증산 요구를 일축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방문은 빈손으로 끝났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빈살만 왕세자의 정치적 위상만 공인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