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인플레이션 정점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중시하는 물가 지표의 상승세가 둔화됐기 때문이다. Fed의 긴축정책 기조가 더 강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이런 분석에 힘입어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두 달 만에 주간 기준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인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봉쇄 정책 등 대외환경이 단기간에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서다.

인플레 한풀 꺾여…다우 9주 만에 상승

美 인플레 정점 찍었나…월가는 '논쟁중'
지난 27일 미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 4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3% 상승했다. 40년 만의 최대폭이었던 3월(6.6%)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폭이 둔화된 것은 2020년 11월 이후 약 1년 반 만이다.

Fed가 가장 중시하는 근원 PCE 물가도 한풀 꺾였다.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지표인 근원 PCE 물가는 4월에 전년 동월보다 4.9% 상승했다. 2월(5.3%)과 3월(5.2%)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두 달 연속 하락한 것은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초 이후 처음이다.

이날 함께 발표된 4월 개인소비지출은 전월보다 0.9% 늘었다. 3월 증가율은 1.1%에서 1.4%로 수정됐다. 4월 개인소득이 0.4%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소비가 견조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과 함께 투자자를 불안하게 했던 경기 침체 우려도 다소 잦아들었다. 조셉 브루셀라스 RSM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가계는 매우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다우존스지수는 9주 만에 주간 기준으로 상승 마감했다. 지난 한주간 다우지수는 6.2% 상승했다. 다우존스는 이전 주까지 1932년 이후 90년 만의 최장 기간인 8주 연속 떨어졌다. 주간 기준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6.5%, 6.8% 올랐다. 두 지수 역시 7주 연속 하락하다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인플레 초래한 외부 요인 여전

둔화된 물가 상승세는 Fed의 ‘매파(통화 긴축 선호) 정점론’에 힘을 보탰다. Fed는 25일 공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을 통해 6월과 7월에 50bp(1bp=0.01%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PCE 물가가 꺾이면서 Fed가 그 이후인 9월에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거나 일시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더 실렸다.

다만 신중론도 여전하다. 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외부에 있는 데다 Fed의 가을 통화정책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ING는 물가가 의미 있는 수준까지 빠르게 떨어지려면 세 가지 요인이 충족돼야 한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종전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변화, 미국의 노동시장 공급 개선이다.

5월 물가 지표도 여전히 불안하다는 지적이다. 3월에 비해 4월 떨어졌던 유가가 이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 휘발유 가격은 최근 사상 처음으로 50개 주 전역에서 갤런(1갤런=3.8L)당 4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50% 이상 상승했다. 여름 ‘드라이빙 시즌’을 맞아 유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최근 JP모간은 8월에 전국 휘발유 가격 평균이 6.2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분기 아마존 등 주요 기업의 실적을 끌어내린 인플레이션이 2분기 실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높다. 씨티그룹은 최근 블랙록에 이어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낮췄다. “미국의 경기 침체를 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는 게 이유였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