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억만장자 잔루이지 아폰테(81)가 1970년 세운 스위스 국적 해운선사 MSC가 덴마크 머스크를 제치고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 선사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비상장 기업인 MSC는 그동안 아폰테 가족 중심의 경영을 통해 성장해왔다. 지난해 말 25년간 머스크에서 일했던 소렌 토프트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 최근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글로벌 해운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MSC, 창업 50년 만에 1위 예약

가족경영 MSC, 세계 최대 해운사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비밀스러운 선박업계의 거물 아폰테가 50여 년 만에 정상에 오르기 직전”이라며 “선박 발주 물량을 감안하면 MSC가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대 해운사가 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해운분석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MSC는 작년 8월 이후 새 선박 43척을 주문했고, 중고 선박 60척을 사들였다. 이에 따라 현재 41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수준인 MSC의 선복량은 500만TEU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머스크는 현재 보유 선박을 기준으로 하면 선복량에서 MSC를 다소 앞서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선박 발주가 거의 없어 425만TEU에 머무를 것으로 추산된다. 1996년 이래 부동의 1위였던 머스크가 머지않아 MSC에 왕좌를 내주게 될 것이란 뜻이다.

MSC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대표적 회사로 꼽힌다. 세계적인 온라인 쇼핑 붐으로 화물 운임이 급등하면서 순익이 크게 늘었다. 글로벌 해운업계는 과거 초과 설비투자 등으로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한 코로나19 사태가 해운사들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비상장사이자 가족기업인 MSC의 매출과 영업이익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매출은 250억달러(약 28조6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

MSC 창업자인 아폰테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지중해 항구와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를 오가는 항로에서 선박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이후 회사가 커지자 1978년 본사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다. 아폰테는 사실 스위스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제네바가 주요 원자재 시장이고 운송·화물 일감이 넘친다는 데 주목했다.

MSC는 1996년까지만 해도 선복량 세계 12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급성장하면서 2003년 머스크에 이어 세계 2위 선사로 도약했다. 20011년과 2017년에는 각각 선복량 200만TEU와 300만TEU를 돌파했다. MSC는 외부 자본을 배제하고 창업자 아들인 디에고 아폰테 사장을 중심으로 컨테이너 해운과 항만사업을 벌이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창업자 부인과 세 딸은 크루즈 사업을 하는 등 철저히 가족 중심 경영을 해왔다.

비밀주의를 이어오던 MSC는 지난해 12월 머스크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토프트를 CEO에 앉혀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했다. 토프트는 머스크에서 석유 거래, 컨테이너 사업 등을 총괄했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과 통찰력을 (가족 회사라는) MSC의 위대한 특성과 결합해 나갈 것”이라며 “MSC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토프트는 앞으로 글로벌 해운 네트워크 최적화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FT는 전했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글로벌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해운업에까지 진출하고 있어 이들 기업과의 경쟁도 큰 과제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