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사진=한경 DB
정준영/사진=한경 DB
가수 정준영으로부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경미(가명) 씨가 BBC와 인터뷰에서 지독했던 2차 가해 상황을 전했다.

16일(현지시간) BBC는 ''정준영 단톡방' 피해자가 여전히 가해에 시달리는 이유'라는 타이틀로 2016년 8월 정준영을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던 경미 씨의 인터뷰를 전했다. 경미 씨는 "동의 없이 몸을 촬영했고, 항의 했고, 남자친구(정준영)는 동영상을 지웠다고 했지만 확인해주지 않았다"면서 "동영상이 유포될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러 갔는데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경미 씨는 "변호사도 불법 촬영을 고소해 봤자 집행유예나 무혐의가 나온다고 했다"며 "2019년 정준영 단톡방 사건으로 실형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지, 그 전까지는 다 집행유예 아니면 무혐의였다"고 전했다.
정준영 성관계 몰카 논란 기지회견 /사진=최혁 기자
정준영 성관계 몰카 논란 기지회견 /사진=최혁 기자
해당 사건은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로 수사가 종결됐다. 하지만 이후 정준영은 가수 최종훈, 승리 등 지인들이 포함된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을 돌려보고, 유포한 정황이 공익제보자의 제보를 통해 알려졌다.

여기에 정준영과 최종훈은 2016년 1월 강원도 홍천과 같은 해 3월 대구에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1심에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은 정준영은 항소심에서 징역 5년 형을 확정받았다.

경미 씨는 2016년 당시 정준영을 고소했다가 취하했다. 이에 대해 "혐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무고죄로 고소당하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몇몇 유명인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성범죄 의혹을 받고 피소되면, 피해 여성을 무고죄로 맞고소해 왔다.

경미 씨는 "경찰은 신고를 안 받아주려 했고, 주변에서는 제가 정준영 인생을 망쳤다고 했다"며 "방송에선 하루 종일 패널들이 제가 무고죄가 아니냐며 떠들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동영상 유포·유출을 막기 위해 고소를 했는데, 포털 실검 1위에 오르는 등 관심을 모으면서 오히려 동영상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경미 씨는 "일베는 말할 것도 없고 맘 카페에서도 '정준영 동영상 좀 보내주세요'라는 글이 넘쳤다"며 "지금은 이것이 범죄라는 의식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정말 좌절스러웠다"고 2차 가해를 당한 경험을 전했다.
정준영/사진=한경 DB
정준영/사진=한경 DB
뿐만 아니라 경미 씨는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댓글, 성적으로 희롱하는 댓글,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댓글 등 2차 가해에 오늘도 시달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16일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폭로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본 여성 12명과 한국 정부, 민간 전문가 등을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심층 면담한 결과물이다. 경미 씨 뿐 아니라 치근덕거리던 직장 상사가 선물한 시계가 알고 보니 불법 촬영 카메라였다는 황당 사례 들도 포함돼 있었다.

로이터통신, CNN, BBC, 파이낸셜타임스(FT), 워싱턴포스트(WP) 주요 외신은 해당 보고서를 주요 기사로 다루며 "한국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악용한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고,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이 그쳐 범죄를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경미 씨 인터뷰와 HRW 보고서를 함께 전하면서 "한국의 사법체계가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충분한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이라며 2020년 불법촬영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79%가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헤더 바 HRW 여성인권국 공동국장은 "대부분이 남성인 한국의 형사 사법 시스템의 공직자들은 종종 불법촬영이 매우 심각한 범죄임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며 "디지털 성범죄는 한국에서 매우 흔해서 모든 여성과 소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생존자들은 법적 시스템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평생 동안 이러한 범죄 피해를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