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일반적으로 미 국채 금리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원자재 가격이 18일(현지시간) 일제히 조정을 받았다.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부각되고 유럽 내 코로나19 신규 감염이 재확산 조짐을 보인 게 최근 원자재 시장의 조정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4월물 기준)은 이날 장중 배럴당 58.2달러까지 밀리며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WTI 선물 가격은 최근 1년여 동안 가장 장기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종가는 배럴당 60달러로 전날보다 7.1% 하락했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커피원두(로부스타) 선물 가격은 1.9% 떨어지며 최근 두 달간 최대 낙폭을 보였다. 옥수수, 구리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하락했다. 원자재 현물 가격 흐름을 반영하는 블룸버그 상품 현물지수는 2.4% 밀리며 지난해 9월 중순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보통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타날 때 위험을 헤지하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원자재 투자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오른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때 원자재 투자가 항상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일단 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 보급 속도가 지연되면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기대 심리가 움츠러들었다. 또 미국 국채 금리가 다른 나라 국채 금리보다 높아져 미국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강(强)달러 현상이 일어난 것도 원자재 가격 약세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약달러를 예상하고 달러 대신 원자재에 투자한 자금이 원자재 시장에서 빠져나갔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도 악재가 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후 산유국인 러시아가 증산을 통해 유가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미국에 보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내 원유 대체 상품인 셰일가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유가가 일정 수준 상승하는 것을 용인해왔다. 농산물 가격 하락을 부추길 만한 여러 요인도 등장했다. 콩의 주요 산지인 아르헨티나와 밀 산지인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작황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최대 옥수수, 콩 수입국인 중국이 가축용 사료를 쌀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나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