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이 없다면 미국 실업률이 20%로 오를 수 있다.”(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분기 0%, 2분기 -5.0%로 추락할 것이다.”(골드만삭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소비시장인 미국 경제가 급전직하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급기야 미 재무장관의 입에서 ‘실업률 20%’라는 ‘패닉’ 수준의 발언까지 나왔다고 미 언론들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반세기 만에 최저인 3.5%로 완전고용 수준이다. 하지만 대규모 정부 지원이 없다면 ‘실업공포’가 미국 경제를 강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무부가 서둘러 “실제 그렇게 될 것이란 뜻은 아니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시장은 충격을 받았다.

각종 협회는 이미 경기 침체와 대량 실업을 우려하는 경보음을 쏟아내고 있다. 미 컨설팅 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음식점 영업 중단이 속출하면서 음식점 관련 일자리가 740만 개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급기야 '헬리콥터 머니' 뿌리는 트럼프…Fed는 CP 사들여 부도 차단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여행협회는 코로나19 여파로 여행업종 일자리 460만 개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내 교통, 소매, 숙박, 레스토랑을 포함해 여행 관련 지출이 올해 3550억달러(31%)가량 줄 것이라며 이는 2001년 9·11테러 때 충격의 여섯 배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호텔·숙박협회도 이미 없어졌거나 4주 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일자리를 400만 개로 추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날 1조달러대 경기부양책을 공식화한 데는 이 같은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므누신 장관의 이날 실업률 20% 발언도 공화당 의원들에게 1조달러대 경기부양책의 절박성을 설명하면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1조달러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 행정부가 꺼낸 부양책(8500억달러)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미국이 금융위기 때처럼 ‘헬리콥터에서 돈 뿌리기’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초기 때만 해도 ‘보통 독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의회에 요청한 긴급 예산안은 25억달러에 불과했을 만큼 상황 인식이 안이했다. 미 의회가 이를 83억달러로 늘렸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 1조달러대 메가톤급 부양책을 꺼낸 배경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실무진이 마련한 부양책은 당초 8500억달러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1조달러 이상을 원했으며 여기에 4월 15일 예정된 납세기한 연장까지 포함해 총 1조20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부양책엔 소상공인 대출 3000억달러, 긴급안정자금 2000억달러, 현금 지급에 2500억달러 등이 배정됐다고 전했다. 특히 현금 지급은 4월에 한 차례 이뤄지는 데 이어 코로나19가 잡히지 않으면 첫 지급일로부터 한 달 뒤쯤 2차로 지급돼 총 지원액이 5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항공업계 지원금 500억달러도 부양책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므누신 장관도 이날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미국인들은 지금 현금이 필요하다”며 부유층을 제외한 미국 성인들에게 2주 내 현금 지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1000달러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연말까지 급여세를 면제하겠다고 했다. 사회보장기금과 노인 건강보험 용도로 근로자 기준 총 7.65%가 부과되는 급여세를 올해 말까지 0%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규모는 7000억달러 정도다. 하지만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적절한 처방이 아니다”고 반대하고 공화당 일각에서도 회의론이 나오자 의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현금 지급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마련한 부양책이 얼마나 빨리 미 의회를 통과하느냐다. 속도가 늦어지면 경기부양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