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머피 노키아 벨연구소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미국의 5세대(5G) 이동통신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석  특파원
마이크 머피 노키아 벨연구소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미국의 5세대(5G) 이동통신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석 특파원
“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선택되고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 장비 회사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28마일(45㎞)가량 떨어진 뉴저지주(州) 머레이힐의 노키아 벨연구소에서 만난 에릭 맨건 홍보 담당 임원의 말이다. “중국 화웨이가 세계 5G 장비 시장에서 앞서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벨연구소는 ‘통신기술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AT&T가 1925년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설립한 이곳에선 1947년 첫 셀룰러(무선통신) 콘셉트가 구현됐고, 1970년대 첫 셀룰러폰이 태어났다. 1962년 미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세계 첫 통신위성 텔스타를 쏘아 올렸으며 페이징 시스템(일명 ‘삐삐’)도 발명했다.

2016년 노키아가 인수한 벨연구소에선 5G 연구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드론과 로봇, 자율주행차 등을 활용한 실험 장면이 보였다. 마이크 머피 벨연구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5G는 4G와 달리 수많은 산업 영역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쓰일 것(end to end network)’”이라며 “끝부분이 될 수 있는 드론과 로봇, 자율주행차 등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벨연구소는 2007년 5G 연구에 들어갔다. 4G LTE(4세대 이동통신)가 상용화되기도 전이다. 마커스 웰던 소장 겸 노키아 CTO는 “이미 6G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G 단말기는 삼성 화웨이 등이 앞서지만 네트워크에서는 우리가 더 많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지난 6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콘퍼런스에서 “화웨이 견제를 위해 미국이 핀란드 노키아나 스웨덴 에릭슨과 연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미국이 이들 기업의 지배 지분을 확보하거나 미국 기업과 이들 기업 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웰던 소장은 이에 대해 “중국 유럽 등에선 정부가 통신기술 개발을 지원해준다”며 “미국 정부가 도와준다면 반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5G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피 CTO는 “5G는 스마트시티, 발전소, 병원, 자율주행차 등 수많은 곳에서 쓰일 것”이라며 “4G에 비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 이동통신산업협회(CTIA)에 따르면 5G 관련 투자액은 미국에서만 2750억달러에 이른다. 이를 통해 3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머피 CTO는 “5G의 거대한 혜택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 간 경쟁이 불붙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한국은 2018년 동시에 5G 서비스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미 행정부는 5G 주도권을 쥐기 위해 지난해 5G 네트워크 기지국의 승인을 신청 후 90일 이내에 해주고, 기지국 임대료도 한 곳당 연간 270달러로 규제했다. 기존 뉴욕시에선 임대료가 5000달러까지 폭등했었다. 머피 CTO는 “트럼프 행정부가 5G에서 앞서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등에 업은 노키아 벨연구소 "美 5G 시장 석권하겠다"
노키아는 미국 시장에서 5G 가입자가 4G보다 많아지는 시기를 2024년으로 예측했다. 머피 CTO는 “지금까지 미국 5G 장비 시장에선 노키아, 에릭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며 “뉴욕시에선 4대 통신사 중 세 곳이 노키아 장비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2008년까지 세계 1위 휴대폰 업체이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지금은 통신장비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휴대폰 사업은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