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럽 에어버스 항공기에 대한 보복관세를 10%에서 15%로 인상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이 지지부진하자 EU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유럽의 ‘대서양 무역전쟁’이 확대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흔들리고 있는 세계 경제에 악재가 더 늘게 됐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4일 에어버스에 대한 보복관세 인상 조치를 오는 3월 18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월 세계무역기구(WTO) 판결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당시 WTO는 EU가 에어버스에 불법 보조금을 지급해 보잉 등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정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연간 75억달러어치 EU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미국은 당시 에어버스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유럽산 와인, 위스키, 치즈, 올리브 등에 25% 관세를 매겼다. 관세 부과액은 WTO가 허용한 75억달러에는 못 미쳤다. EU와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관세 강도를 조절한 결과다.

그랬던 USTR이 이번에 에어버스에 대한 보복관세 수위를 높였다. 또 항공기 외 다른 유럽산 제품에 대해서도 “약간의 재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USTR은 이날 25% 관세 부과 목록에 독일·프랑스산 정육점용 칼을 추가하는 대신 프랑스산 자두 주스는 제외했다. 차드 바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윗을 통해 “이것이 끝이 아니다”며 “그(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위협이 미국 기업에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USTR의 이번 에어버스 관세 인상 조치가 무역협상에서 EU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부터 주요 교역 상대국이 “미국을 등쳐먹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이후 취임하자마자 한국을 시작으로 멕시코 캐나다 일본 중국 등 주요 교역국과 무역협상을 벌여 기존 협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협정을 맺었다. 이어 아직까지 협상을 끝내지 못한 유럽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 11월 대선 전에 EU와 무역협상을 타결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EU는 지난해 미국을 상대로 사상 최대인 1779억달러(약 200조원)의 무역흑자를 냈다. 중국이 지난해 미국과 교역에서 3456억달러의 흑자를 냈지만, 흑자 규모는 전년 대비 18%가량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EU에 △농·축산물과 자동차 시장 개방 확대 △관세 인하와 비관세 장벽 축소 △인위적인 유로화 가치 절하 등을 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EU를 압박하기 위해 EU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최고 25%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EU와 무역합의가 안 되면 EU산 자동차에 관세 부과를 강력 검토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다음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우리는 몇 주 후에 (미국과) 서명할 수 있는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해 미·EU 협상이 조기 타결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3주가 넘도록 협상 진전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USTR이 에어버스에 대한 보복관세를 인상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EU가 에어버스 관세 인상에 대해 재보복에 나서면 사태가 더 꼬일 수 있다. USTR은 EU가 이번 조치에 보복하면 유럽 제품의 관세를 더 높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EU는 이 밖에도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유럽의 디지털세 부과 등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