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德仁) 새 일왕(59·사진)이 22일 공식 즉위식을 열고 세계 평화와 헌법 준수를 강조했다.

지난 5월 1일 왕위에 오른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도쿄 고쿄(皇居·왕궁)에서 대내외에 즉위를 선언하는 ‘즉위례 정전의식’을 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항상 바라면서 헌법에 의거해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즉위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일본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더 기여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새 일왕이 헌법 준수를 강조하는 소감을 발표한 것은 현행 헌법을 고쳐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바꾸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견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날 행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174개국과 유엔·유럽연합(EU) 등의 해외 사절 400여 명 및 일본 인사를 합쳐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일왕 즉위식은 상왕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의 1990년 즉위식 이후 29년 만에 치러졌다.

나루히토 "평화노선 잇겠다"…개헌 노리는 아베에 견제구

22일 열린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공식 즉위식은 일본 왕실의 전통을 강조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오전부터 왕실의 조상과 역대 일왕 등에게 즉위를 보고하는 예를 올린 나루히토 일왕은 오후 1시 도쿄 고쿄(皇居·왕궁) 내 접견실인 마쓰노마에서 즉위의식을 거행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황갈색의 전통 복장을 하고 1913년 다이쇼(大正) 일왕(재위 1912~1926년) 즉위식용으로 제작돼 히로히토(裕仁) 일왕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즉위식에서도 사용됐던 대좌에 올라 “일본 헌법 및 왕실전범특별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고 즉위 사실을 내외에 선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임 아키히토 상왕이 30년의 재위기간 국민 행복과 세계평화를 바라고, 국민과 고락을 함께한 모습을 재차 깊이 생각한다”고 언급하는 등 지난 4월 말 퇴위한 아키히토 전 일왕의 ‘평화주의’ 노선을 이어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법에 의거해 국민통합의 상징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개헌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대비되는 듯한 입장도 드러냈다. 이와 관련,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나루히토 일왕 부부는 아키히토 전 일왕 때와 다르게 식장을 에워싼 복도로 걸어들어와 등단하지 않고 징 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서 이미 대좌에 등단해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일왕의 존재를 장엄하게 보이기 위해 연출된 것이란 분석이다. 일왕의 소감 발표가 끝나자 아베 총리가 축하인사를 하고, 아베 총리 선창으로 참석자들이 만세(반자이) 삼창을 하면서 21발의 예포가 울렸다.

일본 왕실은 8세기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왕위 계승과 별개로 대외적으로 즉위를 공식 선언하는 의식을 해왔다. 이날 행사에는 174개국과 유엔·유럽연합(EU) 대표단 등 해외 사절 400여 명이 참석했다. 찰스 영국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비롯해 스페인과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부탄, 브루나이,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국왕과 왕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저녁에는 고쿄에서 궁중만찬 행사가 열렸다. 1990년 전임 아키히토 일왕 때 일곱 차례 열린 축하피로연은 이번에는 네 차례로 간소화했다. 이번 즉위식에는 총 160억엔(약 1725억원)의 비용이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즉위식 직후 열릴 예정이던 일왕의 카퍼레이드도 최근 일본을 강타한 태풍 하기비스 피해자들을 고려해 다음달 10일로 연기됐다. 도쿄 경시청은 전국에서 파견된 경찰관을 포함해 최대 2만6000여 명을 고쿄 주변에 배치해 삼엄한 경비 태세를 과시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