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지의 글로벌컴퍼니] 스캔들로 상처 입은 스위스의 자존심 'CS'
스위스의 대표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때아닌 ‘스파이 스캔들’로 명성에 타격을 입었다. CS가 사설탐정을 고용해 전직 임원의 뒤를 캔 것이 드러나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CS는 고객·자본을 잃지 않았고, 돈을 세탁하지도 않았지만 무형의 위기를 맞았다”고 평했다.

스캔들의 중심엔 CS 전직 임원이자 스타 펀드매니저인 이크발 칸이 있다. 칸은 올해 43세인 젊고 야망이 큰 스타 금융인이다. 스위스 금융업계에선 티잔 티엄 CS 최고경영자(CEO)의 뒤를 이을 차기 CEO로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칸은 지난 6월 티엄 CEO와 말다툼을 한 후 사이가 틀어지면서 CS를 떠났다. 지난 8월 CS의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 UBS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CS는 이 젊고 야망 있는 금융인이 기존의 고객과 동료들을 UBS로 데려갈 것이 두려워한 나머지 사설탐정을 고용했다. 이 과정에서 CS와 사설 조사 회사 중간에서 다리를 놨던 계약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스위스 사회에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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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금융업계는 연일 이 소식으로 시끄럽다. 스위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 CS의 불안과 치부를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투자회사 네상스 캐피탈의 설립자 제임스 브라이딩이 FT에 “조세피난처에 대한 전 세계적 단속과 아시아 시장의 성장 둔화 등으로 지난 몇 년간 스위스 은행업계는 가장 긴장된 시기를 지내왔다”며 “이 와중에서 CS는 역사적 후광을 기반으로 기업 브랜드를 굳건히 지켜왔는데 터무니없는 일로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CS의 설립자인 알프레드 에셔는 스위스에서 존경받는 기업가다. 취리히 기차역 등 곳곳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일각에선 “이번 스캔들이 자본을 잃거나 돈세탁을 한 것보다 본질적으로 나쁜 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위스 사회가 추구하는 사생활 불가침의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마크 피스 바젤대 교수는 “대중들의 분노는 티엄 CEO로 대표되는 취리히 엘리트들의 인식을 향한다”며 “인종차별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칸은 파키스탄 이주민 2세다.

스위스 검찰은 사설탐정과 CS 임원 등을 상대로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 1일 피에르 올리비에 부에 CS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이번 스캔들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그는 보안 책임자로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고 티엄 CEO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은행들이 직원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번 스캔들은 전문성을 자랑하던 CS의 명성을 뒤흔들었다”고 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