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통신용 반도체업체인 퀄컴이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받았다는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이 21일(현지시간) 나왔다.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로부터 통신용 반도체 판매와 별도로 막대한 특허료를 거둬온 퀄컴의 사업 모델에 제동을 거는 판결이다.

美법원 "퀄컴, 과도한 특허료로 삼성 등에 불공정 행위"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 루시 고 판사는 “퀄컴이 휴대폰 반도체 시장에서 불법적으로 시장 경쟁을 억압하고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챙겼다”며 반독점 위반 판결을 내렸다. 2017년 미 연방통신위원회(FTC)가 퀄컴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법원이 FTC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법원은 퀄컴에 “휴대폰 제조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전면 재협상하고 경쟁사들에도 공정한 가격에 특허 사용권을 제공하라”고 판시했다. 또 특정 업체와의 독점 공급 계약 체결을 금지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향후 7년간 FTC에 모니터링 결과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WSJ는 “이번 판결은 세계 스마트폰산업에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퀄컴은 즉시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퀄컴 제동 건 美법원 "계약 전면 재협상하라"

퀄컴이 미국 법원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2일 퀄컴 주가는 나스닥시장에서 10% 이상 급락하며 출발했다. 퀄컴이 독점적인 통신 반도체 기술을 토대로 수십 년간 휴대폰 제조업체들에 거둬온 막대한 특허 수수료 수입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법원 루시 고 판사는 “퀄컴의 라이선스 관행은 수년간 부호분할다중접속(CDMA)과 4세대(LTE) 이동통신 칩 시장에서 경쟁을 저해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퀄컴과 경쟁하고 있는 통신용 반도체칩 제조업체와 휴대폰 제조사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피해를 줬다”고 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TC)는 2017년 퀄컴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이 소송을 제기했다. FTC는 “퀄컴이 독보적인 통신용 반도체 기술을 내세워 자사 제품에 특허료를 지급하지 않는 기업에는 무선통신 칩셋을 판매하지 않는 전략으로 휴대폰 제조사들로부터 과도한 로열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퀄컴이 자사의 통신용 반도체칩만 사용하는 조건 등을 내걸어 삼성전자, 인텔 등 퀄컴 경쟁사들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FTC는 퀄컴이 칩셋 경쟁업체들에는 특허 제공을 거부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쳤다는 점도 문제를 삼았다.

법원은 퀄컴의 반독점 행위를 인정하면서 FTC의 손을 들어줬다. 루시 고 판사는 퀄컴이 자사 특허권에 과도하게 높은 로열티를 붙여 경쟁 기업을 시장에서 밀어내는 등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단말기 도매가에 일정 비율을 로열티로 부과해 연간 약 50억달러의 돈을 벌어들이는 수익 모델 자체도 불공정 요소가 있다고 봤다.

미 연방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퀄컴이 벌이고 있는 각종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12월 퀄컴에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1조3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퀄컴은 이에 반발해 2017년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퀄컴은 애플과도 로열티 지급 방식을 놓고 2년간 분쟁을 벌였다. 애플은 퀄컴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과도한 로열티를 부과했다며 배상을 요구했고, 퀄컴은 로열티 지급을 보류한 애플이 계약을 위반했다며 맞소송을 냈다. 지난달 애플이 퀄컴에 합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마무리하면서 퀄컴은 애플에 모뎀칩을 다시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 화웨이와도 비슷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소송이 확정될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휴대폰 제조사들이 퀄컴에 지급하는 특허료가 줄어들면 휴대폰 가격이 인하될 수 있어서다. 퀄컴은 이들 휴대폰 제조사들로부터 제조 원가의 5% 안팎을 특허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도 수혜가 예상된다. 모바일 휴대폰에 들어가는 통신칩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만들 때 퀄컴에 특허료를 내고 있어서다. 다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퀄컴과 상호특허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이후 퀄컴에 지급하는 특허 수수료가 상당 부분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업체와 통신칩 제조사들이 퀄컴과 개별 협상을 벌여 특허료를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지연/좌동욱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