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반발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AIIB는 중국이 주도해 세운 다자간 개발은행이다.

미국과 EU는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소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가 서방으로 세력을 넓히려는 중국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와 중국의 일대일로 관련 양해각서(MOU) 초안을 입수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로마를 방문하는 오는 22일 이 MOU를 맺을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중국의 일대일로에 참여한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AIIB를 자금 지원 경로로 명시해 주목된다. 일대일로에 참여한 국가들은 대부분 중국개발은행과 중국수출입은행의 인프라 펀드를 통해 차관을 받았다. 하지만 대출 과정이 불투명하고 중국 기업의 건설 계약과도 묶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AIIB는 중국 국유은행과 달리 EU 등 참여국들이 요구하는 경쟁입찰, 환경영향평가 등 국제 기준에 맞춰 돈을 빌려줘야 한다. FT는 “이탈리아가 EU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동맹국들의 우려를 완화시키고자 한다”고 평가했다.

파키스탄 라오스 스리랑카 등 일대일로 참여국 대부분이 과도한 채무 부담에 시달리는 만큼 이탈리아도 중국의 ‘채무 덫’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이 상대국에 초기 자본을 빌려주고 주로 중국 기업들을 통해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완공 뒤 얻는 운영 수익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구조지만 사업 채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재정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선 이탈리아에 이어 몰타도 일대일로 참여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