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인도, 중국, 파키스탄 등 아시아권 국가 순방에 나섰다. 두둑한 오일 머니로 아시아 국가들의 환심을 얻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0월 벌어진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지목돼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 등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17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들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파키스탄의 정유·액화천연가스(LNG) 설비 건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등에 돈을 대기로 하는 총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또 파키스탄에 60억달러 규모의 차관도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빈살만 왕세자를 영접하기 위해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가 공항까지 나왔고, 왕세자가 탄 차량을 직접 운전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위해 인프라에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400억달러(약 45조2000억원)의 빚을 진 탓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빈살만 왕세자는 이어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카슈미르 접경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앙숙 관계다. 외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두 나라를 잇달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인도는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사우디와 협력할 필요가 있고, 도로와 빌딩 건설을 위한 인도 국영투자인프라펀드(NIIF)에 사우디가 투자하기를 바라고 있다.

인도 다음은 중국이다. 중국은 사우디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하나다. AFP통신은 “왕세자가 우방이 있다는 점을 서방에 과시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