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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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까지 낸 고교생 밴드의 드럼 연주자,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그림을 1200억원에 사들인 미술 애호가, 민간 기업이 개발한 우주선을 타고 달 여행을 가기로 한 모험가.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평범한 면모는 아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 한 사람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일본 최대 온라인 의류 쇼핑몰 조조타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에자와 유사쿠(43)가 주인공이다.

마에자와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5월 발표한 일본 부자 순위에서 자산 보유액 27억달러(약 3조400억원)로 8위에 올랐다. 20위 내 유일한 40대였다. 그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설립한 민간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첫 번째 탑승객으로 지난 9월 선정돼 주목받았다. 공부엔 뜻이 없던 고교생이 쇼핑몰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두고 우주여행을 계획하기까지 마에자와의 인생은 파격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대학 진학 포기한 밴드 드러머

일본 지바현 가마가야에서 태어난 마에자와는 1991년 와세다실업학교에 입학했다. 와세다대를 비롯한 일본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였지만 마에자와는 대학 진학엔 별 관심이 없었다. 출석일수가 모자라 졸업도 겨우 했다. 대신 친구들과 ‘스위치 스타일’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음악에 몰두했다. 마에자와는 드럼 연주자였다.

고교 졸업 후엔 미국으로 가서 밴드 공연을 보러 다녔다. 1995년 일본으로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가져온 음반과 카탈로그를 우편판매 방식으로 팔기 시작했다. 취미로 하던 음반 수집이 생계 수단이 된 것이다. 마에자와의 첫 사업이었다. 음반 판매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98년 스타트투데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 밴드 고릴라 비스킷의 노래 제목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에자와는 밴드 활동을 병행했다. 스스로 “유통업이 아니라 음악 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러다 2001년 밴드 활동을 중단하고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음반에서 벗어나 패션 상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4년 패션 온라인 쇼핑몰 조조타운을 개설했다. 조조라는 이름은 일본어로 똑같이 ‘소조’라고 발음하는 ‘창조(創造)’와 ‘상상(想像)’의 뒷글자를 딴 것이다.

고급 브랜드부터 패스트패션까지 6000여 개 브랜드를 취급하는 조조타운은 연간 700만 명이 이용하는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성장했다. 의류업체들은 판매금액의 30%를 수수료로 내면서도 조조타운에 입점하기를 원한다. 조조타운에 상품을 선보이면 매출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조조타운의 지난해 매출은 980억엔(약 9940억원)이었다. 현재 시가총액은 6700억엔(약 6조8000억원)대로 일본 최대 백화점인 이세탄미쓰코시를 제친 지 오래다. 마에자와는 회사 주식 37.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옷은 인터넷으로 못 판다’ 상식 파괴

마에자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사업이 성공한 비결에 대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좋아하던 음반을 팔아 돈을 벌기 시작했고, 역시 관심이 많았던 패션상품으로 사업을 확장해 오늘의 조조타운을 일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의 성공 배경엔 고정관념과 상식을 깬 혁신이 있었다.

조조타운은 제조업체의 상품을 온라인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순 중개에 머물지 않았다. 조조타운은 입점업체의 제품 사진을 촬영해 홈페이지에 올리고, 소비자에게 프로모션 정보를 보내는 일까지 마케팅 전 과정을 도맡는다. 본사가 있는 지바현에 대형 창고를 운영하면서 상품 배송도 직접 한다.

마에자와는 조조타운만의 의류 규격을 도입했다. 같은 치수라도 브랜드마다 실제 옷 크기가 달라 고객이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은 조조타운이 제공하는 사이즈 정보를 믿고 옷을 구입한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은 옷을 입어볼 수 없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던 업계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옷을 구입한 뒤 최대 2개월까지 결제를 미룰 수 있는 지급 유예제도 성공을 거뒀다. 결제를 계속 안 하거나 반품을 요구하는 고객이 생기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 그런 사례는 많지 않았다.

조조타운은 2012년부터 하루 6시간, 주 3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마에자와는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더라도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6시간을 넘지 않는다”며 주 30시간제 도입을 결정했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남는 시간을 취미활동과 자기계발에 쓰는 편이 낫다고 본 것이다. 근무시간을 줄인 뒤에도 조조타운은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거듭했다.

미술품 수집·우주여행…꿈꾸는 사업가

마에자와의 다음 목표는 조조타운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일본에선 탄탄하게 기반을 잡았지만 아직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는 못했다. 조조타운 자체 브랜드(PB) 의류 판매도 시작했다.

마에자와의 좌우명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는 “정말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달 여행을 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어렸을 때부터 달을 사랑했고, 달 여행이 일생의 꿈이었다”고 했다.

그는 와인 수집, 스포츠카 운전 등을 좋아한다. 자택에 와인 수천 병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수십억원 대 슈퍼카도 여러 대 갖고 있다. 미술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2016년 5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 바스키아 작품을 5730만달러에 샀고, 2017년 5월 역시 소더비에서 바스키아의 또 다른 작품을 1억1050만달러에 구입했다.

마에자와의 미술품 수집은 취미생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2012년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고 현대 미술의 차세대 주자를 키우겠다”며 현대미술진흥재단을 설립했다. 자신이 사들인 작품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무상으로 대여하기도 한다. 고향 지바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우주여행도 미술가들과 함께 다녀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