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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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혁신의 중요한 원천이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언론과 인터뷰할 때면 자주 이같이 말한다. 공감은 그의 경영 철학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뇌성마비 아들을 키우며 공감을 체득한 그는 “공감은 다양한 가치를 가진 직원들을 융화하도록 하면서 소비자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나델라 CEO는 한때 침체를 겪은 MS를 부활시킨 주역이다. 나델라식 공감 경영은 안전지향주의에 빠졌던 공룡기업 MS에 도전 정신을 불어넣었다. 최근 MS는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애플과 아마존을 넘어 15년 만에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해 주목받고 있다.

위기에서 부활한 MS

MS는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위기를 겪었다. 애플, 구글이 PC에서 모바일로 시장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꾸준히 수익을 냈지만 안정적인 사업만 추구해 성장 동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때 MS 제품과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기업 와이콤비네이터의 공동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2007년 “MS는 죽었다”며 “아무도 MS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딕 브래스 전 MS 부사장은 2010년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제너럴모터스(GM)가 트럭에만 매달릴 수 없는 것처럼 MS의 미래 역시 윈도와 MS오피스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혁신 문화가 사라진 게 MS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델라 CEO도 당시 상황을 “관료주의가 혁신을, 사내 정치가 팀워크를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윈도에서 벗어나라

MS가 침체기를 경험하게 된 이유는 창업자 빌 게이츠가 만든 PC 운영체제(OS) 윈도에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MS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윈도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 CNBC는 “애플, 구글 등 경쟁사들이 성장하는 동안 MS는 윈도에 발목이 잡혔다”며 “당시 시장에서 승부할 MS만의 무기가 없었다”고 전했다.

그때 나델라 CEO는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라는 새로운 비전을 들고 나왔다. 윈도에 집중하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클라우드 시장에 발을 들였다. 클라우드는 컴퓨터로 작업한 데이터를 개인용 컴퓨터(PC)가 아니라 외부 서버에 저장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장악하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나델라의 MS는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Azure)로 틈새를 공략했다. 단순히 데이터 저장 공간만 파는 방식이 아니라 윈도와 오피스365 등 통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며 AWS와 차별화했다.

동시에 전 세계에 수많은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는 등 클라우드에 집중 투자했다. 대신 선두 주자를 따라잡기 힘든 스마트폰 사업에선 과감히 발을 뺐다. 2013년 노키아로부터 인수한 무선사업부는 2016년 폭스콘에 매각했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애저의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끌어올렸다. AWS가 51.8%의 점유율로 압도적인 1위지만, MS도 13.3%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애저를 통한 클라우드 사업 매출은 MS 전체 매출의 25~30%를 차지하는 효자 부문으로 성장했다.

경쟁사와의 공존 전략

경쟁사와 전면전에 나서는 대신 공존하는 전략을 편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스티브 발머 전 CEO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발머 전 CEO는 빌 게이츠처럼 경쟁사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폈다.

하지만 나델라 CEO는 2016년 ‘MS는 리눅스를 사랑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윈도의 경쟁 OS인 리눅스와 협력을 선언한 것이다. MS는 윈도와 리눅스의 오픈소스를 활용해 클라우드 시장 장악력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MS가 독점 비즈니스 관행을 벗어던지고 상생을 꾀하면서 재도약의 날개를 달게 됐다고 분석한다.

애플, 구글과도 경쟁하는 대신 공존하는 선택을 했다. MS는 애플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폰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피스앱을 개발했다. 주력 사업인 클라우드에서도 최대 경쟁사인 아마존과 손을 잡았다. MS는 아마존과 각사 인공지능(AI) 비서인 코타나와 알렉사를 상대 서비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협력했다.

과감한 인수합병(M&A)에 나선 것도 성공 비결로 거론된다. MS는 2016년 직장인 중심의 소셜미디어 링크트인을 262억달러에 사들였고 지난 6월에는 개발자 커뮤니티인 깃허브를 75억달러에 인수했다. MS는 단숨에 직장인 5억 명의 개인 정보와 2800만 명 이상 개발자의 아이디어를 손에 넣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MS가 2012년 가지고 있던 600억달러 규모의 현금이 부활의 밑거름이 됐다”며 “MS의 부활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기술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경영에 접목한 공감 리더십

나델라 CEO는 20여 년 전 MS 입사 당시 면접관으로부터 “아이가 길에서 울고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델라는 “911을 부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아이가 울고 있다면 먼저 안아 올려야 하지 않겠나”며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면접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나델라 CEO는 당초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난 첫아들을 돌보면서 공감의 의미를 깨달았다. MS를 이끄는 경영 철학의 근간이다. 경직된 사내 문화 개선, 사업 구조조정, 경쟁사와 공존을 택한 전략은 모두 공감의 정신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MS는 지난해 윈도10에 시선 추적 기술을 추가했다. 시선 추적 기술은 눈동자 움직임으로 컴퓨터 화면을 조종하는 기술이다. 뇌성마비 장애인과 루게릭병 환자 등 근육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다.

직원들은 뇌성마비 등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체득했다. 나델라 CEO는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사람을 더 좋은 동료이자 사업 파트너로 만드는 공감 능력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서 발달한다”고 전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