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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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의미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프랑스와 영국에 수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프랑스를 다시 위대하게, 영국도 다시 위대하게.

곤경에 처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사면초가에 몰린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모습은 한때 위대했던 나라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어째서 그런가. 18세기에 영광을 누린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옛 모습을 되찾았다. 유럽인들은 전쟁의 파편으로부터 매우 빠르게 경제를 재건했다. 동시에 그들은 계몽주의 시대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복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나 복지 지출은 경제성장을 저해했다. 이 사실을 유럽 정치 지도자들이 깨닫기까지 거의 40년이 걸렸다. 그들은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통해 프랑스를 비롯해 재정을 방탕하게 쓰는 나라들이 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재정 규율을 정했다. 한 국가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유럽연합(EU)이라는 기구를 출범시켰다. 재정 규율은 대체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EU 산하의 규제 기관은 늘었다.

마스트리흐트 조약부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둘러싼 런던의 대혼란, 유류세 인상에서 촉발된 파리의 시위를 하나로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난 25년간 EU 체제에서 이득을 얻은 사람들이 이 같은 혼란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호소해 당선되면서 이 같은 세계적인 분열상이 드러났다. 그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사람에게 비난받았다.

이른바 ‘정치 엘리트’라고 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과 이를 통해 드러난 현실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의 지도자들이 2차 세계대전 후 수립한 정치·경제 체제가 광범위한 사회적 안정을 가져왔다고 믿는다. 얼마 동안은 그게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체제를 개선하겠다고 주장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세계적인 경제성장을 이끈 영웅은 정치 지도자들이 아니다. 마이크로칩과 같은 기술 발전과 시장의 힘이다. 산업혁명 이래 모든 역사적 진보와 발전은 혁신을 바탕으로 했다. 혁신은 기술 혁신을 말한다. 정치적 혁신이 아니다. 정치적 혁신은 존 로크 이후 일어나지 않았다.

진부한 얘기지만 마이크로칩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어디서 기업을 창업할지에 대한 고민이 글로벌 경제를 이끌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는 더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극도로 작은 전자기기가 환상적인 업적을 이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제적 혁명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저항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 노동자 계층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피해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결과라는 주장에 대해 논의해 보자.

먼 훗날 경제학자들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경제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경제를 비교할 것이다. 이 비교는 ‘미국 경제가 어떻게 1년 반도 안 돼 전국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하고, 임금이 오르는 호황을 맞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와 재정 지출에 따른 ‘슈거 하이(sugar high: 일시적 흥분 상태)’ 효과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당파적인 설명이다.

경제적으로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가 경제에 가했던 규제를 트럼프 행정부가 철회한 효과가 크다는 것이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기는 규제의 시대가 아니라 ‘하이퍼 규제’의 시대였다. 그들은 미국 산업 전반에 갑자기 과도한 규제를 가했다. 경제에 재갈을 물렸다. 파리의 시위와 브렉시트의 혼란을 보면서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 자체보다 그렇게 많은 규제를 만들어낸 사고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짐작건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공무원 개개인은 자기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만든 규제가 건강한 경제를 망가뜨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의 70년간 유럽 국가들에 만연한, 그리고 지난 25년간 EU 집행위원회를 지배한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유럽은 점점 더 많은 복지와 규제 체제를 갖춰왔다. 복지와 규제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가 질식할 때까지 계속 증가했다. 독일은 다른 나라와 달리 2000년대 초 개혁에 나섰고 홀로 성장했다.

결국 영국 국민은 EU의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렉시트를 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을 개혁하려다가 유류세 인상에 반발한 중산층의 반대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전 세계가 빠진 늪이다.

집권 3년차를 맞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수입 할당 등을 통해 경제를 관리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한편 민주당은 터무니없게도 사회주의를 외친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미국 경제의 놀라운 부흥은 국가 지도자가 관료주의 대신 혁신과 시장을 택했을 때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원제=The Global Swamp

정리=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column of the week] '시장주의' 밀어붙인 미국…'관료주의' 유럽에 승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