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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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 것이라는 기대가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핵심이다. 그런 자신감을 잃어버리면서 미국 사회는 달라지고 있다. 퓨리서치센터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달 내놨다.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는 2002년 이후 가장 높다. 미국인의 65%가 경제 상황이 좋다고 응답했다. 경기가 극도로 침체됐던 2009년 봄엔 17%만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반면 미래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풍족하게 살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33%에 그쳤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짝을 이룬다. ‘평균적인 미국인’의 살림살이가 20년 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45%나 된다. 이런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는 본능적인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인만 비관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현재에 대한 낙관과 미래에 대한 비관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인 85%와 스웨덴인 81%는 현재 경제 상황이 좋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가 자신보다 더 잘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35%에 불과했다. 호주는 지난 25년간 경기침체를 겪지 않은 나라다. 그런데도 자녀의 삶이 부모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8%뿐이다.

현재 경제 상황조차 비관적으로 보는 나라들이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둡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아이들이 더 잘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영국에서도 이 수치가 23%에 그쳤다.

유럽 사람들도 미국인과 비슷하게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스페인인의 62%, 이탈리아인의 72%, 그리스인의 87%는 지금보다 20년 전이 더 살기 좋았다고 대답했다. 이 나라들은 지난 몇 년간 재정위기를 겪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일인의 46%, 프랑스인의 56%도 20년 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영국과 캐나다에서도 그렇게 대답한 사람이 각각 53%와 48%였다.

호주에 대한 조사 결과는 놀랍다. 호주의 주당 가계소득 중간값은 지난 20년 새 1100호주달러에서 1600호주달러로 증가했다. 또 지난 10년간 호주의 가구당 순자산 중간값은 72만2000호주달러에서 92만9000호주달러로 높아졌다. 호주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는 객관적인 경제지표 이외의 다른 요인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반면 미국에선 비관적인 심리가 실제 경제지표와 관련이 있다. 미국 가계소득의 중간값은 1979년부터 1999년까지 5만2000달러에서 6만달러로 증가한 뒤 오히려 뒷걸음질한 때가 많았다. 그러다 2017년이 돼서야 1999년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인들이 향수를 느끼는 것은 특정한 한 시점이 아니다. 과거 수십 년간 미국에선 가계소득이 꾸준히 증가했다. 간혹 불황이 와서 소득이 줄더라도 이내 회복됐고 이전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그런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과거에 가졌던 낙관적인 태도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우리가 어떤 정책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 과정에서 가계소득 중간값은 2012년 5만4700달러에서 2017년 6만1400달러로 증가했다. 이 기간 가계소득 증가는 고용 인원 증가와 근로시간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노동시장이 완전고용에 가까워지면 소득 증가는 임금 인상을 통해서만 지속될 것이다.

가계 소득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이사벨 소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발간한 저서 《잊혀진 미국인》에서 미국 근로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포괄적인 정책을 제시했다. 직업훈련과 기술교육 지원,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자녀 양육비에 대한 세액공제, 이익 공유, 평생학습 비용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근로 동기를 부여하고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이다. 기업의 직원 연수 비용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방안도 있다.

좌파 성향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독점적 지배력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또 노동조합 등을 통해 근로자의 협상력을 높이면 가계소득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파 성향 전문가들은 근로 유인을 높이는 방안을 선호한다. 가족과 공동체의 역할도 중시한다. 오렌 카스 맨해튼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발간을 앞둔 저서 《과거와 미래의 근로자》에서 이런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선거에 나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여야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현재 정책으로는 미국 경제에서 근로자의 몫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를 되돌릴 희망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미래에 대한 비관도 지속될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이란 나라에 깊은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

원제= The American Dream Needs a Jolt

정리=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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