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경제적 사형선고에 해당…신속한 효과에 유혹느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적대 국가들에 대해 제재(sanction)를 너무 많이 발령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적 수단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려 하다 보니 개인과 단체의 자산을 동결하고 여행을 제한하는 등의 제재가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이처럼 보도하면서 제재가 미국의 첫 번째 외교정책이 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월 북한 핵 개발 자금의 통로로 지목돼온 북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기 위해 북한과 관련된 무역회사 27곳, 선박 28척, 개인 1명을 추가하는 '역대급' 제재를 단행했다.

같은 달 북한 외에도 콜롬비아, 리비아, 콩고가 마약과 원유 밀거래, 소년병사 모집과 성범죄 의혹 등을 이유로 제재 대상이 됐다.

파키스탄, 소말리아, 필리핀의 테러단체 추종자들과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 구성원들에게도 제재가 쏟아졌다.
WP "트럼프 정부 제재 남발… 지난해 1천곳 블랙리스트에"
지난 2001년 9·11테러 후 잦아진 미국의 제재는 과거에는 북한, 이란, 러시아처럼 미국에 위협적인 국가를 주로 겨냥했다.

그러나 요즘은 '안정을 저해하는 행동'에 동시다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글로벌 로펌 '깁슨 듄'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 첫해인 2017년 한 해에 블랙리스트에 올린 개인·단체는 1천 곳에 가까웠다.

이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 추가된 제재 대상보다 30% 많고, 오바마 행정부의 집권 첫해 이 명단에 등재된 규모보다 3배 크다.

미국 정부 관리들은 제재의 채찍을 드는데 심사숙고하고 있으며, 제재를 가했을 때 행동 변화가 따를 것이라는 '효과'를 미리 측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재를 '경제적 사형선고'라고 표현한 '깁슨 듄'의 한 관계자는 "사전통지도, 사법적 검토도 필요 없고 효과도 신속하니 어느 정부든 제재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이처럼 미 정부와 의회가 제재를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하고 확장할 경우 오히려 칼날이 무뎌질 수 있다고 비판론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한 제재 때문에 미국과 동맹의 우호 관계가 흔들릴 여지도 크다고 우려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미국이 당장 대이란 제재를 7일부터 재개하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긴장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이란의 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 개인에 대한 제재) 대상에 유럽 기업들이 포함된다면 그야말로 험로가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오는 11월 4일부터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하는 후속 제재가 뒤따른다면 미-유럽 관계는 더더욱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