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통상전쟁의 충격이 세계 무역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분쟁의 주요 품목인 철강과 곡물 등의 가격이 하락하는 등 상품시장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 교역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해운업 대표지수인 발틱운임지수(BDI)도 8개월여 만에 1000선이 무너지는 등 연관 산업 전체로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하락하는 원자재 가격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미·중 통상전쟁이 심해지면서 글로벌 경기 위축과 교역 축소 신호가 잇따라 감지되고 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원자재 가격이다. 핫코일의 중국 시장 가격은 t당 약 520달러로 올 들어 4%가량 하락했다. 미국이 중국산 철강에 2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산업용 로봇 등에 고율 관세를 물리기로 하면서 수요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에 수출되지 못한 저가 중국산 강재류가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열연코일 가격도 빠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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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수요 부진 우려는 원자재인 철광석을 운반하는 벌크선 운임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상 운임 동향을 나타내는 BDI는 지난 4일 1000선이 무너진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BDI가 1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8개월여 만이다.

중국이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은 미국 곡물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복 대상으로 언급한 콩과 옥수수 선물 가격은 최근 줄곧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의 가격 동향을 보면 미·중 간 대립이 본격화한 지난 3월 중순 이후 하락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 돼지고기에 고율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돼지고기 선물 가격도 이달 들어 7%가량 하락했다.

중국이 미국 농산물에 대한 관세 보복을 본격화하면 카길 등 미국의 대형 농산물업체는 물론 일본계 종합상사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곡물의 상당량을 마루베니상사, 미쓰이물산 등 일본계 종합상사가 처리하고 있다.

◆곳곳으로 옮겨 가는 ‘불똥’

각국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차세대 성장 산업들도 미·중 통상전쟁의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바클레이스증권 분석에 따르면 미국 전기자동차(EV) 제조업체 테슬라는 중국 판매 확대가 사실상 힘들어진다. 완제품 형식으로 수출되는 테슬라 전기차에 최대 50%의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테슬라는 지난해 매출의 10~12%가량을 중국 시장에서 거뒀고 공격적인 시장 확대를 꾀해왔다. 산업용 로봇과 모터를 생산하는 일본 야스카와전기는 중국 공장 생산품의 미국 수출 길이 가로막히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 회사는 최근 몇 년간 중국 공장 설비 투자를 늘려왔다.

미·중 충돌의 피해가 세계 교역 전반에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 글로벌 증시도 불안정한 모습이다. 지난 3월 이후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2.09%, 중국 상하이지수는 3.94%,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92% 하락하는 등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기업들도 부메랑 걱정

상당수 미국 기업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율 관세로 중국 상품 가격이 오르면 중국에서 부품과 원자재를 수입하는 미국 기업의 비용 부담 또한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국 상품에 대한 무차별적인 관세 부과가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달리 일자리를 없애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 농기계·건설장비 기업인 버미어의 제이슨 앤드링거 최고경영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값싼 부품을 수입하는 덕분에 미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며 “미국이 일방적인 관세정책을 밀어붙인다면 다른 나라 기업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3일 관세율 25%를 적용할 1333개 중국 상품 목록을 발표하면서 의류와 신발 등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품은 제외했다. 하지만 중국산 부품을 수입하는 미국 기업은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장기적으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유승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