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과 영장없는 감청 등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패트릭 레이 상원 법사위원장은 지난 9일 테러용의자 고문, 영장 없는 도청 승인과 부시 백악관이 법무부를 조종해 일부 검사들을 부당 해고를 했는지 여부 등 부시 행정부의 과거사를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존 코니어스 하원 법사위원장도 과거사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특히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와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부시 행정부의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 논란을 현 정부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8%는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답했고, 24%는 처벌은 않더라도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조사를 해야 한다고 답하는 등 조사 필요성을 제기한 응답이 62%에 달했다.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현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2개의 전쟁을 수행하고, 경제난 해결에 전력해야 하는 만큼 과거사 조사에 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과거를 되돌아 보기 보다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데 더 관심이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누구도 법위에 있을 수는 없다"며 여운을 남겨 과거사 조사에 대한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봐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레이 위원장은 과거사 조사 필요성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로 해석하면서 의회에서 계속 문제제기를 해 나갈 방침이며, 조사작업이 진행되면 1년내에 완료해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없애겠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공화당은 부시 행정부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정보기관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며 진상조사에 반대하지만 부시 정부가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 등 반문명적 행동으로 미국의 명성에 먹칠을 가한 만큼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 부시 정부의 실정이나 과거사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NYT)는 22일 일요판에서 과거사 조사와 관련한 4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86년 불거진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스캔들로 미 정부가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인을 구하기 위해 '적대국'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반군을 지원하다 들통난 `이란-콘트라' 스캔들 조사. 당시 미 의회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특별검사로 로런스 윌시를 임명해 6년간 조사활동을 벌였다.

윌시 검사는 88년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존 포인덱스터, 올리버 노스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핵심 측근들을 기소했지만 후임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관련자 6명을 모두 사면해 당파적 대립이 극심한 상황속에서 과거사 조사에 따른 형사 소추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예가 됐다.

부시행정부 실정 조사에 찬성하는 측은 100여명의 테러용의자들이 미국정부가 관리하는 구금시설에서 고문 등으로 숨진 사실을 지적하며,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소추만이 법의 지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지만 올리버 노스 중령의 묵비권 행사에서 보듯이 부시 행정부의 고문허용 관련자들이 비슷한 행동을 보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75-76년 중앙정보국(CIA)의 해외 요인 암살과 국가안보국(NSA)의 민권운동가 감시 및 연방수사국(FBI)의 마틴 루터 킹 목사 자살유도 시도 등을 파헤친 처치 상원의원의 진상조사 활동도 주목되는 예. 처치 위원회의 진상조사는 포드 대통령의 CIA에 대한 암살 금지 명령과 해외감청시 법원의 허가 등 각종 정보기관 개혁을 이끌어 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처치 위원장이 부여된 권한을 넘어선 조사를 벌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9.11 테러공격 진상조사위원회와 같은 중립적인 고위인사들로 구성된 `블루리본 패널'을 구성해 조사하는 방법.레이 상원법사위원장도 지지하는 이 방법은 위원회에 소환권을 부여하고, 과거 남아공에서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처럼 진상을 털어놓은 관련자에 대해 처벌을 면해준 예를 원용하자는 것. 미국 건국초기 위스키에 대한 소비세 부과로 품귀현상이 일자 농민과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1794년의 `위스키 반란사건'에 대한 해법으로 워싱턴 대통령은 이 같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한 전례가 있다.

이 방법은 의회가 과거사 문제는 독립적인 위원회에 맡긴채 국정현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과거사 조사가 진행될 경우 정보요원들의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마이클 헤이든 전 CIA국장 등의 문제제기에 대한 해답이 될수도 있다.

마지막 방법은 거창하게 과거사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하는 대신 현재 개별 부처별로 진행되는 조사에 맡기는 방법.현재 법무부는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고문기법 사용을 정당화한 의견에 대한 윤리조사와 NSA의 영장없는 감청에 대한 조사 그리고 CIA는 심문 비디오 폐기에 대한 조사작업을 자체적으로 벌이고 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