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사특약 독점전재 ]

다운사이징은 끝났는가.

96년초 미전역을 뒤흔든 대량감원의 태풍이 잠잠해지고 있다.

당시 뉴욕타임즈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해고에 대한 불안이 개개인의
가정은 물론 사회전체의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인들도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감원을 추진하는 기업들을 성토하고
나섰다.

특히 지난 1월 AT&T의 4만명 감원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호감가는 기업" 조사에서 수위를 다퉈온 AT&T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 회사경영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해고란 "절명직전 회사의 마지막 극약처방"이었기에 AT&T의
감원은 "만행"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상식밖의 다운사이징 이후 AT&T의 주가는 치솟았다.

이를 계기로 GE 골드만 삭스등 잘나가는 기업들의 대량해고가 잇달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다운사이징은 사회적 이슈로서의 매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다운사이징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미미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93년 7.1%였던 실업률은 96년 중반에는 5.1%로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신규고용은 증가했다.

지난 3년동안 총 8백5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게다가 이중 상당수가 저임금 단순직종이 아닌 일정수준 이상의 직장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둘째는 "업사이징"의 추세다.

IBM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대표적 사례다.

90년초반 전체 종업원의 절반인 20여만명을 잘라내며 미 감원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IBM은 지난해 2만1천명의 인원을 늘렸다.

GM, 휴일렉트로닉등 유수기업들도 해고의 칼날을 접고 인력충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운사이징이 종을 친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다운사이징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고 말한다.

이전의 감원이 불황시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생산성 향상및
주력업종 강화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종전의 마구잡이식 감원도 사라졌다.

이제는 치밀한 계산을 근거로 감량을 추진하고 있다.

다운사이징의 대상이 민간부문에서 공공부문으로, 일반근로자에서 중간
관리자급으로 넘어가는 것도 새로운 추세.

이같은 변화는 무엇보다 경영 마인드의 변화에 기인한다.

기업의 사이즈가 자랑이던 시대는 지났다.

기업들은 이제 경쟁력 있는 "핵심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려면 "날렵한 몸매"가 필수다.

이같은 흐름에 따라 자연히 "아웃소싱"이 활발해졌다.

아웃소싱은 청소, 건물관리, 보안, 컴퓨터 시스템등 주변업무를 외부업체에
맡기고 본연업무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시스템.

세계적 스포츠용품회사인 나이키는 아웃소싱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나이키는 제품생산에서 디자인과 판매를 제외한 모든 작업을 외주로 처리
한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대기업 서비스회사들이 급성장했다.

현재 미국 최대의 고용주는 임시 대체노동력을 공급하는 맨파워사.

이회사는 76만7천명의 인원을 거느리고 있다.

바로 이점이 기업들의 대대적 감원에도 불구하고 고용율이 높아진데 대한
해답이다.

그렇다면 다운사이징의 끝은 어디인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교수는 "아직 멀었다"고 단언한다.

젠슨 교수는 "국제무역장벽의 제거로 세계 노동시장에 값싼 노동력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생산에 치중할수록 절대인력
수요는 감소해 결국 잉여인력을 솎아내는 작업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대학원 니틴 노리아교수는 이와는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그는 "기업들이 다시 팽창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조직슬리밍을 추진해온 기업들은 주종목에서 "경쟁력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며 이에 따라 완만하나마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한편 UCLA의 앤더슨 경영 대학원의 데이비드 루이스교수는 보다 적극적인
낙관론을 편다.

"다운사이징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이 높아져 생산을
늘리게 되며 이는 고용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다운사이징의 폐해도 낙관적 전망에 힘을 더해 준다.

1만2천여명의 근로자를 해고한 델타항공의 경우 각 부문에서 "일손부족"
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경영효율을 노린 다운사이징이 도리어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수년에 걸쳐 축적돼온 경영의 맥이 일시에 끊김으로써 기술혁신에
퇴행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웃소싱에도 약점이 있다.

우선은 기업의 업무 장악력이 약화된다.

가령 컴퓨터 시스템을 외부회사에 맡긴 기업은 정보기술부문에 대한
통제력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비용절감을 위한 아웃소싱이 경비 증대요인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서비스 부문에서도 독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비용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운사이징의 막이 가까왔다고 보는 또다른 근거는 기업들이 "안정"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

근로자들의 소속감및 신뢰감이 강할수록 높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편 경영실적에 기초한 연봉연동제가 확대되면서 비용절감의 길이
다양해진 것도 다운사이징의 필요성을 반감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경우에 한한다.

유럽이나 일본등에서 다운사이징은 넘어야할 험준한 산맥.

이들 국가들엔 아직도 정부에 의해 보호되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개방과 규제완화라는 물결앞에서 대량감원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유럽이나 일본은 미국보다는 유리한 처지다.

"미국"이라는 살아있는 "참고서"가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된 최적의 다운사이징 기법을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감원엔 반발과 마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에 따른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 분명하다.

밀림을 헤치고 들어갈때 선두의 뒤를 따르는 후발대가 훨씬 안전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