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2일로 임기 만료되는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장(70)을 3번째 의장직에 연임시킬 것이가?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놓고 목하
고민중이다.

미국의 제2인자로 일컬어지는 FRB의장직은 금융정책 결정권으로 올해
경제의 향방을 좌우,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재계는 그린스펀의 재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상원의 권고와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FRB의장직과 관련, 코니
맥 미의회양원합동경제위원장(공화,플로리다주)은 17일 그린스펀의 재임명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를 비롯한 경제계도 맥 상원의원과 마찬가지로 미경제의 인플레를
잡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공로로 그린스펀의 재임을 "유일한 대안"
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욱이 그린스펀의 최근 행보는 예리한 경제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공화당원으로서 민주당정부와의 밀월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란한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FRB의 금리인하 기대감으로 인한 월가의 주식매도사태와
관련한 백악관참모대책회의에서 클린턴은 금리인하 소망을 피력했다.

같은날 오후 FRB는 금리인하를 단행, 주가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인하폭은 0.25%에 불과, 금리인하를 반대한 공화당의원들의 심기도
크게 거스르지 않았다.

그린스펀은 멕시코의 금융위기에서도 정부의 긴급자금융자정책을 지지,
의회에서 로비활동을 벌였다.

또 정부와 의회간의 예산안마찰에서는 정부폐쇄를 막기 위해 국채발행한도
를 높일 것을 주장해 왔다.

동시에 공화당의 균형예산안을 적극 지지하기도 한다.

그린스펀은 또 최근 연설에서 미중산층 소득 정체의 위험성을 수차례
경고했다.

이는 클린턴이 대선 캠페인주제로 내걸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소비자물가를 3% 이내로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예리한 통화
정책자"로서의 그린스펀의 면모는 방대한 정보를 흡수해 인플레이션 조짐을
미리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으로 정평나 있다.

40여년간 경제를 주시해 온 그는 일상에서 금값동향에서 소매판매지수까지
수시로 확인하고 있으며 모호한 지수에서도 경기를 진단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6월 그린스펀이 한 연설에서 "8등급트럭 수주" 현황을 언급
하자 경제전문가들이 그 의미를 몰라 참고서적을 뒤진 끝에야 8등급트럭이
바퀴 18개의 초대형트럭을 뜻함을 알 정도였다.

경제에 대한 그린스펀의 이같은 태도는 장기통화공급을 결정하는 보통
통화정책가들과는 극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점에 비판의 화살이 날아들기도 한다.

그린스펀이 단기 경제통계에 너무 집착, 통화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FRB는 지난 2년간 금리인상을 7차례, 금리인하를 2차례 실시했다.

이는 정부가 경제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자신의 지론과 다른
행동으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란 평가를 낳기도 한다.

비판론자들은 또 그린스펀이 지나친 긴축통화정책을 추진, 경기침체를 몰고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클린턴대통령이 최근 FRB의장 지명시기를 늦추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클린턴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그린스펀이 1월과 2월중
금리인하를 한차례 단행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그린스펀은 지난 92년 대선당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통화긴축정책
을 고수, 부시대통령의 재선실패에 일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인플레퇴치"를 자신의 가장 큰 임무로 공언해 온 앨런 그린스펀은 뉴욕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74년 포드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 의장을 역임한 뒤
레이건대통령에 의해 지난 87년 FRB 의장에 임명됐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