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품 FA' 켑카가 먼저 선택…메이저 우승 함께한 스릭슨
유명 프로골프 선수에게 용품 계약은 양날의 검이다. 계약한 순간부터 그 브랜드 제품만 써야 하고, 중간에 함부로 캐디백에서 뺐다간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클럽과 궁합이 잘 맞아 계속 승승장구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것과 같은 역효과가 난다.

'용품 FA' 켑카가 먼저 선택…메이저 우승 함께한 스릭슨
프로골프 투어 상금 규모가 해마다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른바 ‘용품 자유계약선수(FA)’는 점점 더 늘고 있다. 용품 계약금은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때 따라오는 ‘메인 후원 계약’ 등의 수입보다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오크힐CC에서 열린 남자골프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을 제패한 ‘메이저 사냥꾼’ 브룩스 켑카(33·미국·사진)는 대표적인 용품 자유계약 선수였다. 켑카는 원래 나이키 클럽을 썼는데, 나이키가 2016년 갑자기 용품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졸지에 용품 FA가 됐다.

족쇄가 풀린 켑카는 이후 펄펄 날아다녔다. 2017년과 2018년에 US오픈 2연패를 달성했고, PGA챔피언십에서도 2연패(2018, 2019년)를 거뒀다. 그래서 켑카는 쏟아지는 ‘러브콜’을 거부하며 FA 상태를 유지했고, 골프 마니아들은 그가 매번 어떤 클럽을 들고나오는지 관심을 보였다.

그랬던 켑카가 2021년 1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들고나온 클럽은 골프 관계자들의 눈을 비비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타이틀리스트나 테일러메이드, 캘러웨이 등 ‘메이저’ 용품이 아니라 PGA투어에선 쓰는 선수가 몇 안 되는 스릭슨을 캐디백에 넣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드라이버부터 아이언까지 모두 스릭슨 제품을 꽂았다. 당시 엉덩이와 무릎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재활해온 켑카는 부활을 위해 여러 클럽을 테스트하다 스릭슨을 썼을 때 테스트 결과가 좋았고, 과감하게 스릭슨을 택했다. 그리고 같은 해 2월 피닉스 오픈에서 2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자신이 건재함을 알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86%를 기록한 켑카의 높은 그린 적중률에 주목하며 스릭슨 아이언을 언급했다.

스릭슨 제품에 만족한 켑카는 이후 수십 차례의 추가 테스트를 더 거친 끝에 과감하게 스릭슨과 정식 계약을 채결했다. 클럽만 바꾼 게 아니라 선수가 클럽만큼이나 예민하게 생각하는 공까지 스릭슨 제품을 쓰는 데 서명했다. 웨지도 스릭슨의 형제 브랜드인 클리브랜드 제품을 쓰기로 했다. 대신 3번 아이언(나이키)과 퍼터(스카티카메론) 자리는 FA로 남겨놨다.

켑카의 활약으로 스릭슨은 자사 제품을 쓴 메이저 챔프를 처음으로 배출했다. 켑카 역시 2년 만에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추가하면서 ‘메이저 사냥꾼’ 수식어를 이어가게 됐다. 켑카가 PGA투어에서 거둔 9승 중 5승이 메이저대회다. ‘메이저대회 5승’은 켑카를 포함해 역대 20명만 지닌 대기록이다.

켑카가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드라이버는 스릭슨 ‘ZX5 LS Mk II’ 모델이다. 로프트 각이 낮지 않고 아마추어와 비슷한 10.5도를 쓰는 게 특징이다. 아이언은 ‘ZX7 Mk II’, 웨지는 클리브랜드 ‘RTX6 집코어’를 사용했다.

공은 스릭슨 Z-스타 다이아몬드 제품을 썼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