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인 "2부투어 쓴맛 본 게 보약…소렌스탐처럼 '오래 가는 골퍼' 돼야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공격밖에 답이 없다고 봤어요. 근데 일이 벌어진 거죠.”

전영인(19·볼빅·사진). ‘골프영재’의 풋풋함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능숙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지난해 말 호주 동계훈련을 떠나기 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최연소로 올 시즌 전체 출전권을 따낸 후일담을 물었을 때였다. 그는 “아빠의 만류에도 벙커 옆 핀을 보고 그냥 쐈다”며 “지금은 스코어를 줄일 때라고 버텼고, 그만큼 절박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동반자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부녀의 옥신각신은 팽팽했다. 전영인은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베팅’을 감행했다.

2부투어 지옥경험 ‘연습이 자신감’ 깨달아

그는 8라운드(144홀)의 큐시리즈(Q스쿨)에서 5라운드까지 9오버파 50위로 부진했다. 베팅을 감행한 사흘 후 그의 순위는 1오버파 13위로 급상승했다. 더 어려워진 마지막 3개 라운드에서는 모두 언더파를 치는 뒷심으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꿈에 그려왔던 LPGA투어 카드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전영인은 올 시즌 미국 투어에 데뷔하는 ‘핫식스’ 이정은(23)과 함께 강력한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해 어린 나이에 경험한 2부투어(시메트라투어)가 약이 됐다. “두 번째 대회에서 바로 커트 탈락하고서 충격이 컸어요. ‘톱10’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는 유명 골프 교습가인 전욱휴 프로의 딸이다. 다섯 살 때 골프에 입문해 일곱 살 때 엘리트 아마추어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세계 주니어골프 대회에서 5승을 거뒀다. ‘골프천재’로 국내외 방송 출연은 물론 ‘차세대 황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도 라운드할 기회를 잡았다. 누가 보더라도 약속된 미래처럼 보였다. 하지만 갈수록 진입장벽을 높이는 LPGA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때 LPGA투어에서 잘나갔던 언니들까지 2부투어에서 힘을 못 쓰는 걸 보고 냉엄한 현실을 알게됐어요. 여러 고마운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 커지고 골프를 알게 해준 아빠가 미워지더라고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가르쳤어야 했다”며 대들던 그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말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버지는 1년간 스물한 차례나 그의 백을 멨다. 폭풍 같던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연습량부터 늘렸다. 점점 감을 잡아가던 퍼팅에 더 매달렸다. 1야드짜리 퍼팅부터 시작해 0.5야드씩 거리를 늘려가며 홀 주변 동서남북 네 곳에서 모두 성공할 때까지 연습했다. 3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연습량이 곧 자신감이라는 걸 알았다.

“브레이크 보는 게 확실히 좋아졌고, 무엇보다 2야드 이내 짧은 퍼팅은 무조건 넣을 것 같은 느낌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어프로치샷도 자신있게 되고, 골프가 달라진 거죠.”

소렌스탐처럼 오래가는 골퍼가 꿈

부녀 사이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지금 그에게 아버지는 캐디, 코치, 매니저이자 친구다. 그는 “엄마한테는 말하기 그렇지만 아빠랑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며 밝게 웃었다.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또래 친구들과 달리 직업 골퍼의 첫 관문을 뚫어낸 그의 요즘 관심은 유튜브 뷰티 콘텐츠를 보는 것이다. 전영인은 “골프에만 매달리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다”며 “다양한 분야의 삶도 같이 즐기고 싶다”고 했다.

올해 목표는 상금랭킹 ‘톱60’에 드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우승이든, 신인상이든 시드만 유지할 수 있다면 모두 겸손히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다. LPGA 첫 대회는 호주에서 열리는 빅오픈이다. 드라이버는 똑바로 260~280야드를 쳐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부족한 벙커샷과 쇼트게임, 퍼팅을 집중 보완할 작정이다.

꿈은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처럼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골퍼다. 기회가 닿는다면 올림픽에도 출전하고 싶단다.

골프는 그에게 맞는 걸까.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9타 차를 뒤집고 처음 역전 우승했을 때였다.

“1000명이 넘는 갤러리가 박수를 쳐주셨어요. 챔피언의 맛을 그때 이미 알아버렸죠. 승부욕도 좀 있는 것 같고, 사람이 많이 지켜볼수록 힘이 더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정도면 골프 할 만하지 않나요?”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