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째 최고경영자(CEO) 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KT가 CEO 자격 요건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문성’을 제외했다. ICT업계 경력이 없어도 KT의 CEO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KT 안팎에선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가 CEO로 낙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주도 CEO 후보 추천

KT, CEO 요건서 'IT 전문성' 제외 논란
KT는 오는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CEO 관련 정관 개정안과 사외이사 선임안 등을 의결할 예정이라고 9일 공시했다. 이 회사는 전날 이사회에서 정관 개선안(지배구조 개선안)과 사외이사 후보자 7명을 확정했다.

현직 CEO의 ‘연임 우선심사 제도’를 폐지하고 정관상 CEO 자격 요건을 손질한 대목이 눈에 띈다. 앞으로 CEO가 연임 의사를 밝힐 경우 다른 사내외 후보들과 동일한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연임 우선심사 제도가 현직 CEO에 유리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관상 CEO 후보자의 자격 요건은 △기업경영 전문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산업 전문성 등으로 한정했다.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적 지식·경험’이란 문구를 뺀 것이다. KT 측은 “금융, 미디어 등 그룹 사업 전반이 다양해진 데 따라 통신에 국한하지 않고 산업 전체로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CEO 후보군을 정하는 방식도 확정했다. 이번 선임 절차에 한해 외부 전문기관 추천과 공개모집, 주주 추천 등의 방식을 모두 활용하기로 했다. CEO 후보자에 대한 주총 의결 기준은 ‘60% 이상 찬성’이다. 종전보다 기준선을 10%포인트 높였다.

사내이사 숫자는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든다. 기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상설 위원회로 전환하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통합한다. 명칭도 ‘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바뀐다. 이 위원회에는 사외이사만 들어갈 수 있다.

○멈췄던 ‘경영 시계’ 돌아가나

신임 사외이사 후보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고위 관료를 지낸 인물들이 포함됐다. 이날 추천된 7명은 △곽우영 전 현대자동차 차량IT개발센터장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 △이승훈 KCGI 글로벌부문 대표 파트너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양희 한림대 총장 등이다.

이 중 최양희 후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윤종수 후보는 이명박 정부 때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곽우영·이승훈·조승아 후보자는 주주 추천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가 됐다.

김용현 KT 이사회 의장은 이날 KT 주주서한을 통해 “CEO 후보자의 선임 정당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부 낙하산을 방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KT 새 노조는 “낙하산 CEO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정관 개정안 면면을 보면 낙하산이나 이권 카르텔 참호 구축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주장이다.

KT는 올 들어 두 차례 CEO 후보자가 사퇴하는 일을 겪었다. KT 이사회가 구현모 전 대표와 윤경림 전 사장을 차례로 CEO 후보로 지명했지만 정부·여당이 ‘그들만의 리그’라고 지적하면서 중도 사퇴했다. KT는 신임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다음달 신임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CEO 공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임원인사, 조직 개편도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