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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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째 최고경영자(CEO) 공백 사태를 겪고 있는 KT가 CEO 자격요건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전문성을 뺐다. 주주 추천을 통해 사외 대표이사 후보군도 구성한다. 일각에선 정부 눈치를 보느라 필요 이상으로 정관에 크게 손을 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KT는 사외이사 후보자 7명 명단과 지배구조 개선안(정관 개정안)을 확정했다고 9일 공시했다. 정관 개정안은 현직 CEO의 연임우선심사 제도를 폐지하고 정관상 대표이사 자격요건을 개선한 게 핵심 변화로 꼽힌다. 현직 CEO가 연임 의사를 표명할 경우 신규 대표이사 선임 프로세스와 동일하게 다른 사내외 후보들과 같이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자의 자격요건을 △기업경영 전문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산업 전문성 등 4가지 항목으로 변경한다.

다만 기존 KT CEO 자격요건에서 ICT 전문 경험이 빠진 것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이냐는 논란이 제기된다. 그동안은 기업경험과 함께 ICT 전문성도 요구했지만, 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 중인 ‘뉴 거버넌스 구축 TF’가 이를 바꿨다. 회사 사업 영역이 IT 융합으로 확장하는 데다, ICT를 유지하면 CEO 후보군이 한정된다는 이유에서다. KT 측은 “기존 통신뿐 아니라 금융, 미디어, 부동산 등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유관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산업 전문성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선임 절차에 한해 외부 전문기관 추천과 공개모집뿐만 아니라 주주 추천을 통해 사외 대표이사 후보군을 구성하기로 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수한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주주 추천은 KT 주식 0.5%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에 한해 가능하다.

대표이사 후보자에 대한 주주총회 의결 기준은 기존 보통결의(의결 참여 주식의 50% 이상 찬성)에서 60% 이상 찬성으로 상향했다. 해당 대표이사 후보자의 선임 정당성을 강화하면서 내부 참호 구축 및 외부 낙하산을 방지하겠다는 설명이다. 향후 대표이사 선임 시에도 신규 후보는 이번 주주총회와 동일하게 의결 참여 주식의 60% 이상 찬성이 필요하게 됐다. 연임 후보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의결 참여 주식의 3분의 2이상 찬성)를 통해서만 대표이사로 선임될 수 있다.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경영 감독 강화 차원에서 기존 사내이사 수를 3명에서 2명으로 축소한 것도 주요 변화다. 기존 이사회 선임 대표이사와 같은 복수 대표이사 제도는 폐지하고 대표이사 1인 중심 경영 체계로 전환해 대표이사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밖에 대표이사 후보군의 체계적 관리 및 대표이사 후보 심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기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를 상설 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통합해 ‘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전원 사외이사로만 구성한다. 기존 지배구조위원회의 역할이었던 대표이사 후보군 발굴·구성 및 후계자 육성 업무 등도 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이관된다.

이날 결정은 차기 KT 리더십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KT는 새로운 사외이사들을 중심으로 바뀐 정관에 따라 CEO를 뽑게 된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7명은 △곽우영 전 현대자동차 차량IT개발센터장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 △이승훈 KCGI 글로벌부문 대표 파트너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양희 한림대 총장(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등이다. 이 중 곽우영·이승훈·조승아 후보자는 주주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 후보다.

다만 박근혜 정부 때 미래부 장관을 지낸 최 총장, 이명박 정부 시절 윤종수 전 환경부 차관 등이 사외이사 후보에 포함된 것은 ‘정부 색깔 맞추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KT는 올 들어 두 차례 CEO 후보자가 사퇴하는 일을 겪었다. KT 이사회가 구현모 전 대표와 윤경림 전 사장을 차례로 대표 후보로 지명했지만 정부·여당이 ‘그들만의 리그’라고 지적하면서 중도 사퇴했다. 이후 연례행사인 임원인사와 조직개편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KT는 오는 30일 제1차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신규 사외이사 선임과 정관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신임 사외이사로 구성되는 이사회가 중심이 되어 7월께 신임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정한다는 목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