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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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기준금리를 9개월 연속 동결했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요구와, 환율 상승에 따른 달러 유출 확대 우려가 엇갈리는 딜레마 상황에서 현상 유지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중의 현금이 늘어나도 실물 경제로 흐르지 않는 '유동성 함정' 현상도 금리 인하를 주저하는 이유로 보인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중국 특유의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가 5월에도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22일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인하 이후 아홉 달 내리 동결이다. 현재 일반대출 기준인 1년 만기 LPR은 연 3.65%, 주택담보대출 기준인 5년 만기는 연 4.30%다. LPR은 18개 시중은행의 최우량 고객 대상 대출 금리의 평균치다. 실제로는 인민은행이 각종 정책 수단을 통해 결정한다. 인민은행은 지난 15일 정책자금인 1년 만기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동결하면서 기준금리 동결 방침을 시사했다.
9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한 중국
9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한 중국
중국 국내외에선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4월 소매판매, 산업생산, 고정자산투자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경기 침체가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1%로, 미국 등 다른 주요 경제권과 달리 디플레이션(물가 지속 하락)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로는 먼저 최근 위안달러 환율 상승(위안화 가치 약세)이 꼽힌다. '제로 코로나' 철폐 이후 하락세를 보이던 위안화 환율은 미·중 '풍선 정국'이 벌어진 2월부터 뛰기 시작했다. 지난 18일에는 5개월 만에 달러당 7위안 선을 상향 돌파했다. 중국 금융당국이 위안화 환율의 가파른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이날도 장중 최고 0.15% 오름세를 나타냈다.

중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확대되면서 달러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이는 다시 위안화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0~5.25%로 현재도 중국보다 높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하면 위안화로 표시된 주식, 채권 등 자산의 달러 환산 가치도 떨어진다. 위안화 가치의 추가 하락 전망이 커지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외국인은 중국 채권을 4월에도 281억위안어치 순매도했다. 올 1월 이후 4개월 연속 매도 우위다.

중국이 시중 유동성이 넘쳐도 기업의 생산이나 투자, 가계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 상황인 것도 인민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제시된다. 유동성 함정 상황에선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으로 경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중국의 광의 유동성(M2)은 4월말 현재 280조8469억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했다. 작년 4월 이후 12개월 연속 10%대 증가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1~4월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은 4.7%로 1~3월 5.5%에서 내려갔고, 4월 신규 대출도 7188억위안으로 3월(3조8900억위안)의 5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골드만삭스는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지급준비율을 추가로 내려 경기 부양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민은행은 지난 3월 지준율을 0.25%포인트 인하했으며, 이를 통해 시장에 5000억위안 안팎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에도 4월과 12월에 각각 지준율을 0.25%포인트 내렸다.

인민은행은 작년에 LPR은 1년 만기를 1월과 8월 두 차례, 5년 만기는 1월과 5월, 8월 세 차례 인하했다. 5년 만기를 한 번 더 내린 것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