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요금 고지서 받으면 보통 이런 반응이죠.
'이번 달에도 이렇게 많이 나왔네'
전기도 제품이어서 사실 우리가 사서 쓰는 것인데, 왠지 세금 같아서 돈 내면 아까운 느낌이 듭니다.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그런데, 우리가 쓰는 전기가 말도 안 되게 싸게 쓰는 것이고 그래서 말이 되게 하려면 전기 요금을 50%쯤 올려야 한다 이러면 어떨 것 같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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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그렇게 해야지' 하는 분은 별로 없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번 주제는 한 해 적자만 30조원, 한국전력이 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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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은 전력 회사죠. 100% 지분을 보유한 발전 자회사 여섯 곳을 두고 있는데 예를 들어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이런 곳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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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회사들이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생산하면 한전이 이걸 삽니다. 그리고 이 전기를 변전소로 가져와서 전압을 올리거나 내리는 과정을 거쳐 집으로, 회사로, 학교로, 군부대로 보내 줍니다. 이걸 송·배전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한전은 송·배전만 하고 전기는 자회사들이 생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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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생산은 한전 자회사 말고 SK, GS 같은 민간 회사들도 하는데 송·배전은 국내에선 오로지 한전만 할 수 있습니다. 독점이니까 전기 가격을 맘대로 한전이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는 않고 지분 과반을 보유한 정부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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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전기 요금 방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하면 이걸 기획재정부가 같이 보고 결정을 내려 줍니다. 사실 전기 요금은 민생 문제라 대통령실까지 보고가 가니까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자다, 이렇게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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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로 뽑히는 대통령은 당연히 유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죠. 전기 요금을 올리면 유권자가 좋아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전기요금은 늘 한전에선 올리고 싶어 하고 정부는 올리기를 싫어해요. 정부·여당에 불리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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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큰 문제가 된 것이 작년이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에너지 가격이 확 뛴 것이죠. 한전이 사 오는 전기 중에 석탄을 원료로 한 것이 41%, 액화석유가스 LNG 비중이 13% 가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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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1년 새 석탄 가격은 82% LNG 가격은 117%나 폭등했어요. 당연히 한전이 전기를 사 오는 비용도 확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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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사는 데 쓰는 비용, 이걸 전력 도매가 SMP라고 하는데 킬로와트시(KWh) 당 2020년 68.9원 했던 게 작년에 189.1원으로 2.7배나 상승했습니다. 반면 전력 판매 요금은 킬로와트시(KWh) 당 약 122원 수준이었어요. 원가보다 35% 싸게 전기를 팔았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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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밑지고 전기를 파니까 시장에서 왜곡이 발생했습니다. 부작용이 컸다는 얘깁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었습니다.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영업손실이 21조원을 넘었고 연간으로 하면 적자가 30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이 됩니다.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2021년에도 적자가 6조원 가까이했는데 이렇게 되면 2년간 쌓인 적자가 36조원이나 될 것 같아요. 증권사들이 추산한 올해 한전 적자가 10조원을 넘는데 그럼 3년간 누적 적자가 50조원 가까이 됩니다. 한전도 기업인데, 이런 식으로 장사하는 건 말도 안 되죠. 누가 봐도 비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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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한전은 우선 채권을 발행합니다. 전례가 없을 만큼 많이요. 급한 대로 불부터 꺼야 하니까요. 한전 채권은 대한민국 정부와 같은 신용등급을 갖고 있어서 발행만 하면 잘 팔립니다. 국채와 같은 등급인데 국채보다 이자를 더 주니까 기관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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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한전채가 지난해 시장에 너무 많이 풀려서 돈을 싹 쓸어 갔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회사들이 채권을 발행하고 싶어도 한전채 때문에 발행을 못 하거나, 발행해도 이자를 더 얹어줘야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메기 역할을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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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한전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개입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발행 안 하면 버티지를 못하니까 한전채는 지금도 계속 발행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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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도 빚이죠. 채권 발행을 늘리면서 한전의 부채비율은 2020년 187%에서 2021년 223%까지 올랐고 작년에는 400%를 넘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부채 총계가 작년 3분기 기준 177조원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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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큰 부작용이 있는데, 한전 주주들의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는 것입니다. 한전 주식은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상장이 되어 있고 이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많은데요. 한국에만 소액주주가 70만명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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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전 주가는 2만원 안팎인데 이게 20년 전 주가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주가가 2016년을 정점으로 계속 하락 중이에요. 현재 시가총액은 12조원 수준으로 25위쯤 하는데, 2016년 설립된 카카오뱅크와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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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1998년까지는 한국 증시에서 부동의 1위 기업이었는데 그 위상이 엄청나게 꺾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전 주주면 복장 터질 것 같습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상장을 유지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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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적자를 내고 주가가 급락한 것이 단순히 한전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증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 코리아 디스카운트까지 불러오고 있습니다.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의 전체 순이익을 증권가에선 올해 152조원가량으로 추산합니다. 그런데 한전이 또 대규모 적자를, 예컨대 올해 10조원가량 낸다고 하면 한국 기업 이익이 142조원으로 확 떨어지겠죠. 이 경우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아져서 코스피 지수는 그대로인데 한국 주식은 비싸 보이는 부정적인 효과를 냅니다. 그래서 증권가에선 한전이 올해 증시 반등의 걸림돌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결국 한전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전기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데, 그냥 막 올리면 국민들 반발이 클 것 같으니까 우선 자구책부터 마련 중입니다. '할 수 있는 것 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이런 알리바이를 만들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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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 쓰는 땅 팔고, 굳이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자회사들 지분 팔고, 큰돈 쓰는 투자는 뒤로 미루고 하는 식으로 6조원가량의 비용 절감 방안을 작년 6월부터 마련해서 현재 시행 중입니다. 전기를 발전사들로부터 사 오는 가격에 상한을 두는 가격 상한제도 작년 12월부터 시작해서 오는 2월까지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SK, GS 같은 민간 발전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오래 유지하긴 힘들고 응급처치처럼 잠깐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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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구책 마련하고 상한제하고,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것은 전기료를 올려서 충당하기로 했습니다. 한전은 올 초부터 전기 요금 가격을 킬로와트시(KWh)당 13.1원 올리기로 했는데요. 가구당 대략 10% 정도 전기 요금을 더 부담하게 됩니다. 월 10만원 냈던 집은 1만원 정도 전기료가 더 나오는 겁니다. 한전 입장에선 연간 7조원가량 매출이 느는 효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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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인상 폭이 큰 것 같은데, 더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죠. 당초 시장에선 킬로와트시 당 이번에 29원 올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어요. 왜냐면 산업부가 최근 국회에 51.6원 올려야 적자가 안 난다 이렇게 보고했거든요. 그렇게 까진 못 올려도 29원은 올리지 않겠느냐 이게 대체적 예상이었는데, 고작 13원 올렸으니까 추가로 더 올릴 여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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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화끈하게 확 올리고 싶은 맘도 없지 않을 텐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가뜩이나 낮은 상황에서 전기 요금 인상으로 민심의 역풍을 맞을까 봐 눈치 보면서 조금씩 올리고 있는 겁니다. 현재 야당인 민주당에선 올릴 거면 60원 올리자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야당은 정치적 부담이 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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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실 이것도 큰 요인인데 작년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 탓에 전기 요금 인상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전기 요금이 워낙 서민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고, 또 삼성전자 같은 수출 기업들이 요즘 경기 침체로 어려운데 전기 요금마저 오르면 더 힘들어질 수 있거든요. 그래도 더 올린다면 올 상반기에 올리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올해는 보궐 선거 이외에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어서 정치적 이슈에 덜 휘둘리고 물가도 아직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조금씩 낮아지고는 있어서 전기 요금 올리는 충격이 덜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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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요금은 한 번 올리면 잘 내려가진 않아서 한전 입장에선 대규모 적자를 냈을 때, 그러니까 올릴 수 있는 동력, 모멘텀이 있을 때 최대한 올리는 게 좋습니다. 올해 전기 요금을 많이 올려놓으면 몇 년 뒤에 대규모 이익을 낼 여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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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전기요금을 크게 올렸는데요, 이후에 에너지 가격이 하락해서 박근혜 정부 시절에 한전이 막대한 이익을 냈습니다. 한 해 이익 규모가 10조원을 넘었어요. 주가도 박근혜 정부 때 가장 좋았죠.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전기는 공공재여서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을 하다 보니 제때 못 올려서 일을 키운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기 팔면 팔수록 손해였는데…'눈덩이 적자' 한전의 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한전은 2021년부터 전기료를 연료비와 연동해 석탄, 석유, 가스 가격의 오르고 내리는 것에 비례해 전기료를 받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시행이 안 되고 있습니다. 다소 고통스럽더라도 연료비 연동제를 제대로 하고, 정부는 가격에 덜 개입해서 전기료가 정치 문제로 활용되는 여지를 줄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전력, 전기 요금 얼마나 올릴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