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인터뷰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반도체 재고 사상 최대,
이대로면 내년 삼전 영업익 절반으로 꺾여
감산안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하이닉스 연간 적자 전망하는 곳도 있어

주가 측면에선 싼 상태"

반도체 시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대만의 TSMC가 반도체 업계를 주름잡던 삼성전자의 매출(3분기 추정치)을 제치고 처음으로 왕좌에 오를 것이란 전망 탓입니다. 사상 초유의 역전 현상에 업계가 크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삼성전자가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TSMC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작지 않기 때문이죠.

심지어 1위에 오른 TSMC가 내놓은 향후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올해 설비투자 목표치를 10%나 하향 조정하면서 반도체 시장이 앞으로 더욱 쪼그라들 것이란 점을 암시했습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이끌던 삼성전자에게 연이어 암울한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국내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로 불리는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삼성전자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을 줄이는 ‘감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냈습니다. 반도체 메이커에게 ‘감산’은 사실상 금기어로 통합니다. 어느 누구도 실제 감산을 사실을 인정하거나 직접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업계 금기어를 꺼낸 이승우 센터장에게 마켓PRO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켓PRO] "이러다 다죽는다" OO없인 삼성전자도 살아남지 못한다는데…
▶최근 삼성전자가 주주들을 위해 반도체 감산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셨습니다. 실제 감산 움직임이 있나요?
"감산은 반드시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반도체 업계에 닥친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늘 삼성전자를 비롯한 업체들이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감산이 있을까요? 감산이란 말을 라인 효율화 등 다른 이름으로 포장하더라도 반드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요?
"2년 전 유가 선물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시장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수요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일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반도체 업계가 크나큰 충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반도체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상황이 왜이렇게 나빠진건가요?
"코로나19를 겪으며 노트북, TV, 자동차 등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공급 부족 여파로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세트(완제품) 업체를 비롯해 부품업체 등이 모두 주문량을 늘렸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생산업체들도 늘어난 수요에 생산량을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꺾이고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에서 반도체를 사겠다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창고에 재고가 감당할 수 없이 쌓이고 있고, 이런 재고가 존재하는 한 반도체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메이커인 삼성전자에게는 좋지 않은 환경인 것이죠. 지난해 51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의 올해 이익 추정치가 48조원으로 떨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영업이익 추정치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감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나요?
"재고가 차고넘치는 상황에서 생산을 줄이지 않으면 모두가 힘들어집니다. 특히나 수요가 마이너스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은 반도체 가격이 더 떨어지더라도(혹은 스스로 낮추더라도) 아무도 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아무도 사지 않는 제품을 계속 찍어낸다면 회사 실적이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나요?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지난 2018~19년에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일부 업체들이 공개적으로 감산 사실을 밝히진 않았지만 실제로 감산이 이뤄졌습니다. 2016년 당시 알파고 등 인공지능(AI) 시장이 열리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인공지능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었습니다. IT업체들이 당시 데이터센터 등을 빠르게 늘리면서 반도체를 왕창 주문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도 처음 해보는 주문이라 실제 필요한 양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써보니 너무 많은 양을 사들인거죠. IT업체와 같은 수요자 입장에선 재고가 잔뜩 쌓이다보니 구매 예산을 끊어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도체 생산업체들도 쏟아지는 주문에 생산량을 늘렸지만 재고가 쌓이면서 수요가 꺾이자 불가피하게 감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습니다. 과거 PC용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PC업체들이 D램 무료 업그레이드, 혹은 1+1 행사를 하면서 재고를 떨어냈지만 서버용 반도체는 그게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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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삼성전자의 향후 모습은 어떻게 될까요?
"라인효율화 등 어떤 식으로 표현하던 간에 반드시 감산을 해야할껍니다. 그만큼 초유의 비상상황입니다. 올해 저희 증권사에서 예상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추정치가 45조원, 내년은 28조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전망치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겠지만, 재고가 워낙 많아 내년까지 실적이 나쁠 수 밖에 없습니다.

▶주가 측면에선 지금 저가 매수를 노려볼만한 상황인가요?
"현재 주가로 보면 업사이드가 많아보입니다. PER 1배인 상황에서 바닥이 얼마나 더 있겠느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죠. 다만 워낙 시장상 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일부 외국계 증권사에선 내년 하이닉스가 영업 적자를 낼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주가가 현재 비싸지 않은 상황인건 맞아요"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일 때 자식에게 물려줄 주식 1위로 삼성전자를 꼽은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유효한가요?
"그렇게 돼야한다는 것보다 현재로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이죠. 삼성전자가 무너지면 안되니까요. 그러나 과거에 노키아도 모토로라도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삼성전자가 반드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단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감산에 나선다면 현재 쌓여있는 재고가 내년 중반 정도 이후에는 바닥을 찍고 다시 수요가 생겨날 것으로 보입니다"

▶최악이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을 변수는 없나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갑자기 끝나고 미국과 중국이 돌연 화해를 하고 물가가 갑자기 안정되면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나요?"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