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구글의 갑질, 뒷짐 진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의 ‘리즈 시절’(전성기를 뜻하는 신조어)은 언제였을까.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2015~2016년을 꼽는다. 공정위가 국장부터 조사관까지 직위별로 에이스들을 모아 정보통신기술(ICT) 전담팀을 조직했던 시절이다.

당시 공정위의 활약은 대단했다. 구글, 퀄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 혐의, 즉 갑질에 대해 적극 조사하고 위법이 확인되면 엄단했다. 외신은 공정위의 움직임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조사 대상에 이름이 오른 기업의 주가는 10% 넘게 급락하기 일쑤였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유럽연합(EU) 경쟁위원회 같은 선진국 경쟁당국은 “KFTC(Korea Fair Trade Commission) 조사가 모범 사례”라고 치켜세우며 따라 하기에 바빴다.

수수료 30% 인앱결제 강행

상한가를 쳤던 공정위의 글로벌 위상은 2017년 하반기부터 내리막을 걷는다. 묘하게도 시민단체 출신 정권 실세가 위원장을 맡은 시기와 겹친다. 이때부터 공정위의 시선은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국내 ‘대기업 집단’을 향했다. 2000년대 초반 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렸던 조사국을 기업집단국이란 이름으로 부활시켰고 이 조직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공정위 조사관이 들르지 않은 대기업 본사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같은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라 안팎에서 글로벌 ICT 공룡 구글의 인앱결제 강행에 대해 떠들썩한데 유독 공정위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인앱결제는 소비자가 모바일 앱에서 유료 아이템 등을 결제할 때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서만 진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구글은 앱 개발 업체들로부터 결제 방식에 따라 결제금의 최대 26% 또는 30%의 수수료를 ‘통행세’처럼 따박따박 걷어간다. 지난 1일부터는 인앱결제를 거부하는 앱을 아예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조폭식 영업행태’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지만 구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높은 수수료율은 차치하더라도 구글의 영업 행태는 공정위 소관 법령인 공정거래법 위반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법 전문가들은 구글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고객에게 자기와의 거래를 강제하는 ‘거래강제’, 거래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침해하고 불이익을 주는 ‘거래상 지위 남용’ 등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가 구글 인앱결제 강요 행위의 위법성에 대해 조사할 근거가 충분한 상황이다.

국내 앱, 소비자 피해 커져

공정위가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네이버웹툰, 카카오톡, 플로 같은 콘텐츠 업체들은 최근 콘텐츠 이용료를 최대 20% 올렸다. 앱 업체들은 한목소리로 “구글의 과도한 앱 수수료 때문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구글의 인앱결제 갑질과 관련해선 홈그라운드인 미국에서조차 비판이 거세다. 구글 조사를 진행 중인 법무부와 FTC뿐만 아니라 의회까지도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에픽게임스를 비롯한 기업들도 인앱결제 강제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U도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의 불공정 관행 여부를 주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된 판국이다.

자국에서도 ‘불공정’ 낙인이 찍힌 기업을 한국 공정위가 방치할 필요가 있을까. 마침 구글은 공정위의 주특기인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의 리즈 시절 회귀는 구글 갑질에 대한 대응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