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차기 손보협회장' 소식에…증권가 "모피아 부활하나" [여의도24시]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새 손해보험협회장에 내정된 것을 두고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금융관료 출신이 유관기관장을 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정 이사장처럼 세번을 연거푸 하는 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런 사례는 수십년만에 처음”이라며 “다른 핵심 민간 금융기관장에도 관료 출신이 거론되고 있어 ‘모피아 시대’ 부활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3일 증권가에 따르면 정 이사장의 손보협회장 내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앞서 손보협회는 지난 2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정 이사장을 차기 협회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조만간 열리는 총회에서 회원사 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단독 후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내정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 이사장은 1986년 재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금융위원회를 거쳤다. 2015년 공직을 그만 둔 뒤 한국증권금융 사장,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 일했다. 손보협회장까지 하면 세번째로 금융 유관 기관장을 맡게 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내정을 모피아 인사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모피아는 재무관료 출신이 마피아처럼 세력을 구축해 경제계를 장악하는 걸 빗댄 말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증권금융은 금융위 1급 출신이 갈 수 있는 제일 좋은 자리이고, 거래소 이사장과 손보협회장도 요직”이라며 “저런 자리를 세번 연속으로 하는 건 1970년대 이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최근에는 관료 출신이 민간 금융기관장을 한번씩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일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이명박 정부때 ‘고금회(고려대 금융인 모임)’, 박근혜 정부때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가 승승장구했던 것처럼 현 정부에서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가 실세로 떠오른 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대동고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부금회 핵심 멤버로 알려져 있다.

다른 민간 금융기관장에도 관료 출신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는 최근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김용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 민병두 전 국회 정무위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민 전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무부 고위 관료 출신이다.

일각에서는 ‘관피아’(고위관료 출신 민간기관장) 임명 관행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보협회는 모두 민간기업 출신 회장을 선임했다. 그러나 생명보험협회가 2017년 관료 출신을 다시 선임했고 이번에 손보협회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납득할 수 있는 인사”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증권사 임원은 “정 이사장은 증권금융 사장 당시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두고 거래소로 옮겼기 때문에 이번이 세번째 자리라고 볼 수 없다”며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그동안 거래소가 좋은 점수를 받은 것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