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에 전환 포기 잇따라
코스닥 벤처펀드 출범 후 업체들이 대거 발행한 전환사채(CB) 등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2018년 4월 5일 코스닥 벤처펀드 출시 행사에 참석한 뒤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코스닥 벤처펀드 출범 후 업체들이 대거 발행한 전환사채(CB) 등이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이 2018년 4월 5일 코스닥 벤처펀드 출시 행사에 참석한 뒤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코스닥 기업의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투자자들이 조기상환권(풋옵션) 행사를 쏟아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가가 급락하자 투자 대상 기업의 주식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원리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기업이 지난 1~2월 CB, BW 등 주식 관련 사채를 조기 상환한다고 공시한 금액은 3035억원(90건)에 달한다. 전년 동기(2374억원, 73건) 대비 27.8% 늘어난 액수다.

증권업계에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풋옵션 행사가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닥 기업 주식과 CB, BW에 집중 투자하는 코스닥벤처펀드가 2018년 4월 출범한 후 업체들이 대거 발행한 관련 상품이 풋옵션 행사 시점을 맞고 있어서다. 국내 기업이 2018년(4조3479억원)과 지난해(5조3903억원) 발행한 주식 관련 사채 규모는 10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키운 '메자닌 거품'…기업들 '10兆 상환 요청' 밀려오나 불안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14위 바이오 기업 헬릭스미스(21,300 -0.47%)는 지난달 21일 800억원어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 회사가 1년5개월 전 발행한 CB에 투자자가 조기상환권(풋옵션)을 행사한 데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헬릭스미스는 이번 조달금액의 70%에 가까운 550억원을 CB 조기상환을 위해 사용했다. 예상치 못한 빚 상환 요구에 다시 빚을 내는 상황에 빠졌다.

CB·BW 상환요구 봇물…코스닥기업 비상

부메랑으로 돌아온 CB·BW

코스닥 업체들에 CB·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기상환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의료 경영지원업체인 서울리거(1,045 0.00%)는 2018년 말 발행한 130억원 규모 CB의 풋옵션 행사에 대비해 지난달 말 공모로 BW를 발행해 200억원을 조달했다. 서울리거 관계자는 “주가가 최저한도까지 재조정된 전환가격(1795원) 아래로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투자자가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트루윈(8,700 +0.58%)도 투자자가 풋옵션을 행사한 25억원어치 CB의 상환재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3일 70억원 규모 CB를 발행했다.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이노인스트루먼트(1,755 -1.40%)는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이 회사는 2년 전 발행한 300억원어치 CB를 조기상환해야 할 가능성에 대비해 오는 4월 유상증자로 271억원(잠정금액)을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 1~2월 조기상환된 CB·BW 등 메자닌 상품 규모는 총 30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8% 증가했다. 주가 하락으로 투자대상 기업 주식의 매력이 사라지자 원리금 회수에 나서는 투자자가 급격히 늘고 있어서다.

5일 코스닥지수는 650.19로 마감했다. 지난 1년간 13.0%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 1월 23일 이후 한 달여 동안에만 5.1% 하락했다.

2018년(4조3479억원)과 지난해(5조3903억원)에만 국내에서 총 9조7382억원어치 메자닌이 발행된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조기상환 청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임원은 “100여 개 기업의 CB·BW에 투자한 라임자산운용의 환매중단 사태 이후 이들 상품에 대한 투자가 냉각된 데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증시마저 얼어붙었다”며 “적잖은 코스닥 기업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정책 부작용 현실로

금융투자업계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8년 4월 펀드 투자금의 절반을 혁신 벤처기업의 주식과 CB·BW에 투자하는 코스닥 벤처펀드를 내놨을 때부터 메자닌 발행시장의 과열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았다. 펀드 운용사들이 자산배분 요건을 채우기 위해 코스닥 기업의 메자닌 투자를 늘리면 코스닥 기업들의 CB·BW 발행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였다. 정부는 코스닥 벤처펀드 운용사에는 공모주 30% 우선배정, 펀드 가입자에겐 300만원 한도의 소득공제 혜택을 줘 외형을 불리도록 유도했다.

코스닥 벤처펀드 운용사들이 적극적으로 메자닌 상품을 편입하면서 적잖은 코스닥 기업이 무이자 조건으로 CB·BW를 발행하는 이상 현상도 벌어졌다. 유망 기업뿐만 아니라 생존이 어려운 ‘좀비 기업’까지도 손쉽게 CB·BW 발행을 통해 유동성 확보가 가능해졌다. 한 대형 증권사 사장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늘린 영향으로 CB·BW 발행 시장이 급격히 커진 데 따른 후유증이 이번 ‘풋옵션 폭탄’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펀드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소부장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자는 취지로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잇달아 설정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펀드 자금 유입에 힘입어 소부장 업체들의 자금 조달여건이 좋아졌다”며 “향후 업황 악화 등으로 시장 상황이 바뀌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메자닌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으로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을 말한다.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 상품이어서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같은 공간에 빗대 메자닌(mezzanine)이라고 부른다. 채권이어서 부도가 나지 않으면 원금이 보장되고 주가 상승장에선 주식으로 전환해 이득을 낼 수 있다. 코스닥 기업들이 주로 활용하는 자금조달 수단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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