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적금 선호하던 일본인도 퇴직연금 투자, 절반이 펀드…한국은 고작 18% 불과"
“일본인들은 예·적금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최근 일본 직장인들은 빠르게 펀드로 자산을 옮기고 있습니다. 오랜 저금리 상황을 겪으면서 예금이나 단기금융상품과 같이 원리금이 보장되는 상품만으로는 노후를 대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스기타 고우지 전 일본증권경제연구소 특임연구위원(사진)은 지난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라며 “고령화로 이보다 성장률이 낮아진 일본과 한국은 해외에 자산을 분산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기타 특임연구위원은 노무라자산운용 뉴욕사무소장 등을 거쳐 일본증권경제연구소에서 50년간 일본과 미국 자산시장을 연구해왔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제도가 미국에 비해 뒤떨어진 일본은 2000년대부터 정부 주도 아래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일본 정부는 ‘저축에서 투자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일본 DC형 퇴직연금 근로자의 자산 구성에서 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38%에서 작년 48%로 높아졌다. 한국은 이 비중이 18%에 불과하다. 스기타 연구위원은 “일본도 과거에는 한국처럼 대다수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자산을 집중했다”며 “하지만 초저금리 때문에 적극적으로 자산을 늘려가지 않으면 국민의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의 종업원 1000명 이상 기업 중 84%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연금·투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그래도 퇴직연금을 운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무관심층이 많다고 판단해 작년 5월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을 도입했다. 디폴트 옵션은 근로자가 따로 요구하지 않으면 금융회사가 자금을 주식과 펀드 등에 투자해 알아서 굴려주는 퇴직연금 운용 방식이다.

한국도 ‘쥐꼬리 퇴직연금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가 디폴트 옵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스기타 연구위원은 “한국은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기 유리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처럼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는 우량회사 주식을 사는 것도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한국 직장인들은 환율이나 높은 세금을 걱정하지 않고도 글로벌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부동산 자산 쏠림 현상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도 과거에는 부동산 신화가 존재했다”며 “1991년 이후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서 많은 직장인이 큰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일본 부동산값은 1990년 이후 약 50% 하락했다.

DC형 퇴직연금에 편입을 추천할 만한 상품으로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꼽았다. 가입자의 나이가 젊을 때는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높였다가 나이가 들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자산 배분을 해주는 펀드다. 미국은 직장인의 70%가 TDF 펀드에 가입했다. 그는 “인생 단계별로 자산을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투자지식이 부족하거나 자주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TDF가 적절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