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합병해 코스닥시장에 우회상장하려는 비상장사와 코넥스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증시에서 스팩의 인기가 이례적으로 치솟으면서 스팩 주가가 오르고 스팩 수가 많아질수록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스팩의 역설’이 빚어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스팩과 합병 통한 우회상장 급증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스팩과 합병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하기 위해 심사를 받고 있는 비상장사와 코넥스기업은 7곳이다. 이 외에도 여러 기업이 스팩과의 합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에만 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제작용 설비와 2차전지 조립공정 장비를 생산하는 나인테크(교보7호 스팩과 합병), 비데 도어록 로봇청소기 등 생활가전의 부품을 제조하는 이랜시스(IBKS 제6호스팩) 등 두 곳이 스팩과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3일에는 환풍기를 비롯한 환기 시스템을 제조하는 그렉스가 한화수성스팩과 합병예비심사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을 운영하는 애니플러스, 코넥스시장 상장사로 필러 등을 제조하는 한국비엔씨가 합병예비심사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알로이스 등 5곳은 올 상반기 거래소의 합병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보통 1년에 합병까지 성사시키는 스팩 수가 10개 안팎이던 예년에 비해 최근 스팩 합병이 많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팩은 공모자금 납입일로부터 3년 안에 비상장·코넥스사와 합병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된다. 스팩과 합병하려는 기업에 비해 증시에 상장된 스팩 수가 많으면, 그만큼 상장폐지 수순을 밟는 스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스팩 전문 자문회사인 ACPC의 남강욱 부사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비상장·코넥스사와 합병하지 못하면 상장폐지당하는 스팩이 많아 최근 합병 시도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5월 3일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 한화에스비아이스팩의 주가가 이상 급등한 이후 2개월 동안 투자자 사이에서 과열에 가까운 스팩 투자 열기가 이어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26~27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받은 이베스트이안 스팩1호는 스팩 역사상 최고 수요예측 경쟁률인 708.4 대 1을 기록했다.

이런 과도한 투자 열기가 기존에 상장한 스팩에까지 옮겨붙기 전에 스팩 합병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커진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팩 주가가 뛸수록 비상장·코넥스사와의 합병이 어려워지는 특성이 있다. 스팩과 합병하려는 비상장·코넥스사는 스팩의 주가와 공모가(2000원)의 차액을 손실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