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 자산운용 업계에서도 갈수록 '우먼 파워'가 커지고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자산관리와 리스크관리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아직은 여성 임원들이 적어 학연 · 지연 등으로 짜여진 인맥은 따로 없지만 전문성과 열정으로 '각개전투'하면서 세를 키우고 있다. 국내 증권업계의 여성 임원들은 크게 '영업파' '해외파' '전문직' 등으로 분류된다.

영업파의 '맏언니'는 박미경 한국투자증권 본사 영업점 상무다. 1977년 한국투자신탁에 입사해 현재의 한투증권까지 줄곧 같은 회사에서 30여년간 일했다. 그런 만큼 '여성 최초' 기록이 수두룩하다. 제2금융권 최초의 여성대리를 시작으로,2000년 최초의 여성 지점장,2002년 최초 여성 홍보실장 등을 지냈다. 또 PB(프라이빗뱅킹) 본부장 등 다양한 업무도 거쳤다.

이명희 한화증권 서초G파이브 지점장(상무보)도 쌍용투자증권 · HSBC증권 · 삼성증권에서 경력을 쌓은 대표적인 '세일즈 우먼'이다. 다른 증권사를 주관사로 선정해 기업공개를 하려던 한 비상장사가 이 지점장의 성실하고 부지런한 컨설팅 솜씨에 반해 한화증권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실제 그는 본사에서 보내주는 카탈로그만 달랑 들고 영업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이 지점장은 "기업을 방문할 때 꼼꼼하게 경쟁업체를 분석한 자료를 들고 가면 절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진 않는다"고 귀띔한다.

국내외 은행이나 외국계 금융사를 거친 여성 임원들도 상당수다. 과거엔 국내 증권사들이 보수적이어서 여성의 진출이 더 수월했던 은행이나 외국회사에 들어가 경력을 쌓는 것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임원으로 승진한 최선희 동양종금증권 이사는 1982년 제일은행에 입사해 1999년 동양종금증권 국제금융팀으로 자리를 옮긴 후 IB본부에서 기업금융을 맡게 됐다. 지난해 9월 옮겨온 홍선주 하나대투증권 자본시장본부장(전무)도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JP모건 미국 · 홍콩법인을 거쳤다.

오세임 우리투자증권 오퍼레이션센터장(상무)도 씨티은행 · 드레스드너 클라인워트 와셔스틴 증권 · 바클레이즈은행 ·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인 금융업체들을 두루 거친 해외파다. 김진희 퇴직연금컨설팅3본부장(이사)은 우리투자증권과 메트라이프생명을, 위민선 프로젝트금융1본부 PF2팀장(이사)은 우리은행 출신이다. 이들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국제감각으로 자산관리 국제금융 IB 등의 전문가로 평가받아 최근 국내 증권사로 스카우트됐다.

이정숙 삼성증권 컴플라이언스 본부장(상무)은 변호사로 법무법인에서 일하다 1999년 이 회사로 옮겨 금융업계의 법률전문가로 변신한 케이스다.

여성 지점장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각각 8명, 미래에셋에선 7명의 여성지점장들이 활약하고 있다. 신한투자와 삼성증권에는 각각 4명, 동양종금과 하나대투에도 2명씩 있다.

자산운용업계에도 여성 펀드매니저 1세대가 형성돼 있다. 국내 운용업계 최초의 여성 주식운용본부장인 김유경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터자산운용 이사를 비롯해 민수아(삼성투신),정수호(우리자산운용), 원주영 · 박인희(신영투신),임은미(하이자산운용), 김진영(국민연금), 오현정(하나UBS자산운용) 매니저 등이 활약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은영(동양투신), 이소연(프랭클린템플턴투신) 등 주니어 매니저들이 실력을 키우고 있다. 짧게는 1~3년,많게는 10년의 펀드 운용 경력을 보유한 이들은 30대 중후반 이상인 것이 공통점이다. 민수아씨는 "펀드매니저의 기업과 업종 리서치 요구가 점점 커지면서 애널리스트 출신 매니저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