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화 장세라는 말은 지난해의 유행어였다. 올들어 연초부터의 주가폭락은
기관들이 철시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도 있다.

그만큼 기관투자가들의 장세 결정력도 높아졌다.

지난한해 시장을 주도해간 선도세력은 은행이었다.

은행의 깃발아래 연기금과 보험 단자등 기관투자가들도 부지런히
증권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 기관투자가인 투자신탁은 모두 41조원의 주식을 사고팔아 1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기관투자가 전체로는 30%선의 시장점유율이었다.

이제 우리증시도 기관투자가들이 매매의 주된 세력인 선진적 시장으로
구조의 탈바꿈을 하는 것인가.

과연 우리의 기관투자가들은 주식시장에서 제대로 기능하고있을까하는
질문들이 해답을 기다리고있다.

첫째 질문은 기관투자가 매매행태의 건전성 여부에 모아져있다.

제일은행의 투자패턴이 건전한 것인가하는 시비는 지난한해 증권시장의
화제였다.

오르는 주식을 따라사고 내리는 주식을 후려치는 거래는 보수성으로
정평을 얻어왔던 은행의 새로운 투자패턴으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제약주 폭등에 동참하기도한 제일은행은 종종 작전세력의 주체로까지
거론되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연기금의 투자행태도 관심을 끌었다.

일부 연기금은 종목당 한도가 소진되자 은행에 특정금전신탁 계좌를
열어서까지 특정종목을 주물렀다.

불공정매매의 흔적이 있었지만 일없이 넘어가고있다.

일부 은행도 불공정 매매혐의가 발견되었지만 은행감독원이 나서서
주의촉구선의 결과가 나오도록 증권당국에 로비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투자신탁 역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한국투자신탁은 불공정매매여부로 기관경고까지 받았다.

지위를 이용해 기업의 내부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심지어 대량으로
주식을 보유했다는 사실를 이용해 상장기업과 은밀히 거래하는 관행도
지난해엔 극심했다.

한국투자신탁등은 금성사와 금성통신이 합병할때,그리고 대우중공업과
조선이 합병할때 자기회사에 자금을 예치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종합화학주식을 매각해 이익을 빼돌렸지만 무상증자를
실시하고 문제를 덮기로 투신사와 은밀한 합의를 본것으로 알져지고있다.

매매와 운용의 건전성을 기준으로볼때 기관투자가들이 썩좋은 점수를
받고있지는 못할 것같다.

기관비중이 30%에 달하고는 있지만 행태만은 낙후성을 면치못하고있다.

정부당국 역시 "내자식 내가 봐준다"는 식의 태도를 이제는 버릴때가
됐다.

두번째 질문은 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 기관투자가들은 그동안 정부를 의제하고있는 사회적 기구처럼
행세해왔다.

투신은 구재무부의 시장관리기구처럼 기능했고 은행역시 한국은행으로부터
주식과 채권 운용을 거의 매일 지시받고있다.

더구나 은행의 은행계정은 한국은행이,신탁계정은 재무부가 운용지시를
해올 정도로 구체적이고도 밀도있는(?)시장관리가 이루어지고있다.

증권사상품은 말할 필요도없다.

상품주식운용한도를 고무줄처럼 조정하면서 정부는 시장을 관리해왔다.

결국 이같은 프로세스는 금융과 증권산업을 낙후시키고 일부 기관이
시장을 과점하는 증권시장의 독점적 구조를 만들어왔다.

투자신탁은 여전히 공룡같은 몸집으로 시장에 군림하고 증권사는 아직도
수수료 수입만 먹고 살아야하기때문에 대중투자가들에게 과잉매매를
부추기고있다.

정부의 한마디에 일제히 증권시장에서 철시하고있는 최근 며칠간의
기관투자가 모습도 볼만한 것이다.

미국은 60년대말,일본은 80년대를 거쳐 기관투자가 중심의 시장구조를
만들어왔다.

현재 미국증시의 기관매매비중은 70%,일본은 80%선에 이르고있다.

개인의 자금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다양한 기관투자가들끼리 경쟁하다보니
정보와 가격결정력에 있어 게임다운 게임이 성립된다.

기관비중을 늘리는등 증시 구조개편의 요체는 역시 금융과 증권업무의
영역조정에도 있다.

정부는 증권사에 대해 내후년에나 투신업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프로그램을 갖고있지만 그렇게 늦출 이유는 별로 없다.

투자자문사라고 만들어 놓은지도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아직 일임매매
조차 허용되어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사설투자자문사들은 활개짓이다.

정부는 언젠가는 사설자문사를 때려잡는다고 법썩을 떨것이다.

한국증시의 후진성을 즐기고 그틈새를 이용해 권한의 무한확대를
추구하는 정부의 옹고집을 탓할 뿐이다.

"자율과 책임"이라는 평범한 말이야말로 지금 기관투자가들에게 적용
되어야 할 덕목이 되어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