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시벨', 독특한 소재·완벽한 김래원…조화로움은 '글쎄' [리뷰]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 설치되는 폭탄,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줄어드는 폭발 시간.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죽이고 집중하다 귀를 틀어막기를 반복한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효과는 100점. 김래원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연기는 200점이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느냐에는 다소 물음표가 남는다. 영화 '데시벨'이다.

16일 개봉한 '데시벨'은 소음이 커지는 순간 폭발하는 특수 폭탄으로 도심을 점거하려는 폭탄 설계자 전태성(이종석)과 그의 타깃이 된 전직 해군 부함장 강도영(김래원)이 폭발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다. 소리에 반응하는 폭탄이라는 소재로 '사운드 테러 액션'이라는 장르를 내세웠다.

과거 잠수함 안에서 여러 승조원들을 이끌었던 도영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상황과 달리 어딘가 깊은 상처를 간직한 듯하다. 아픔을 꾹꾹 누르고 살아가는 그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헤매는 승조원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승조원 한 명이 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 사실을 안 순간 걸려 온 전화 한 통. 도영을 겨냥한 테러였다. 해군 E.O.D 상사인 도영의 아내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한순간 볼모로 잡혔다.
'데시벨', 독특한 소재·완벽한 김래원…조화로움은 '글쎄' [리뷰]
'데시벨', 독특한 소재·완벽한 김래원…조화로움은 '글쎄' [리뷰]
영화는 초반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정체를 숨긴 채 전화 통화만으로 도영을 철저하게 지휘하는 치밀한 성격의 태성과 남다른 사명감을 지닌 영웅적 면모가 돋보이는 도영의 신경전은 뻔한 설정인 듯 보이지만 김래원의 흡인력 있는 연기 덕에 단숨에 생명력을 얻는다. 폭탄이 소리에 반응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는 독특한 소재가 주는 긴장감도 크다.

'사운드 테러 액션'이라는 키워드를 내건 만큼, 소리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귀를 틀어막게 하는 장면이 다수 있다. 물이 끓는 주전자 소리, 창문 여는 소리, 밥솥과 도마 소리 등 일상의 생활 소음부터 경기장이나 워터파크에 모인 군중의 환호, 호각 소리 등 폭탄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사운드가 생생하게 구현됐다. 이것들은 공격적인 폭탄의 폭발음과 대조돼 강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시각적으로 흥미로움을 주는 건 잠수함 장면이다. 실제 잠수함 함장의 자문을 받아 완성된 세트장은 놀랍도록 섬세하게 표현됐다. 관객들에게 잠수함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미술, 촬영, 조명 감독의 논의 끝에 좁은 내부의 환경과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아냈다.

카체이싱에 수중 폭파 장면까지 대부분의 액션을 CG와 대역 없이 소화해낸 김래원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탄탄하고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지닌 그는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감성적으로 수준 높은 내면 연기를 펼친다. 스토리 흐름에 맞춰 다채롭게 펼쳐지는 김래원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종석도 캐릭터의 심리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잠수함 내에서 극한의 상황을 맞고 그려내는 감정 연기는 관객을 작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연기 퍼즐을 완벽하게 맞추는 건 차은우, 이민기다. 그간 연기력 논란이 따랐던 차은우는 '데시벨'에서 놀랍도록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기는 두말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모든 배우와 어우러진다.

가족애, 상처와 복수 등 전형적인 클리셰와 신파적 요소가 짙은 작품을 배우들의 연기력이 진부하지 않도록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데시벨', 독특한 소재·완벽한 김래원…조화로움은 '글쎄' [리뷰]
다만, 김래원과 함께 폭탄의 폭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특종 취재 기자 정상훈의 역할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김래원의 연기와 조화를 이루진 못한다. 또 별다른 사연 없이도 폭탄의 위험에 선뜻 몸을 던지는 모습에서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영웅적으로 표현되는 또 다른 인물 이상희 역시 마찬가지다. 직업적 사명감과 가정에 대한 헌신이 지극한 배역을 소화한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선보인다. 강렬하다 못해 강한 존재감으로 일순간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다. 하지만 전태성의 타깃으로 지목된 이후 캐릭터는 곧 힘을 잃는다. 김래원을 비롯한 승조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언정, 단 한 번의 반전조차 없는 캐릭터 활용이 어딘가 허전하다. 이야기의 한 구성만을 위해 단편적으로 존재하는 배역 같아 앞선 그의 활약이 오히려 어색하다.

구멍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 독특한 소재가 주는 긴장감까지 다 충족했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의 조화로움은 다소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